[Woman Sense] 다시 돌아온 기공사의 길…소중함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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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Sense] 다시 돌아온 기공사의 길…소중함 깨달아
  • 김수민 충남기공사회 여성이사
  • 승인 2018.07.09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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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치과기공사 중 다수는 남성이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여성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기공사라는 직업 자체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만큼 여성 기공사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업무 강도와 출산 등 여성으로서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Woman Sense는 여성 기공사들의 솔직담백한 마음을 담은 지면으로 이번 호에는 김수민 충남기공사회 여성이사의 원고를 게재했다.

김수민
• 충남기공사회 여성이사

처음 실습을 나간 건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충남 예산에 있는 개인병원 기공실이었다. 예산에 살았지만 그런 치과가 있는 줄 몰랐으며, 당연히 그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전화번호와 주소만 달랑 받아서 인사 갔다. 처음 기공실장님과 마주한 기억은 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찾아뵌다는 전화를 마치고 진료가 끝난 치과 쪽문을 찾아서 올라갔다. ‘윙윙’소리가 들리는 곳이 기공실일 것으로 생각해 문을 열었고 길고 좁은 기공실에서 일하시던 실장님은 멀뚱히 서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학교에서는 기공사가 되기 위한 기본적 이론과 실습을 배운다면 이곳 기공실은 기공사란 직업의 방향을 제시해준 곳이다.
2학년 1학기 때만해도 실습성적은 평범했지만, 이곳에서 실습한 이후로는 내가 봐도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단지 모양만 외워서 작업하는 조각이 아니고 왜 그런 형태가 나오는지에 대해 이론적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임상케이스를 통해 어떻게 접목시키는 지에 대해 많은 훈련을 하게 되었다. 2학년 여름방학 실습이 끝난 뒤로도 종종 학교를 안가는 날에도 기공실에 갔었다. 그때는 기공실을 일하는 곳이 아닌 놀러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다녀 그런지 가끔 야근을 해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결국 3학년 정규실습까지 그곳에서 마치게 되었다.

처음 취업은 대전에 있는 꽤 규모가 큰 기공소였다. 나는 포세린파트 빌드업 보조로 들어갔고 좋은 사수를 만나 일을 했지만 매일 지속되는 야근과 아는 사람 한명 없는 타지생활은 22살 사회초년생이 견디기 힘들었고 결국 다시 예산으로 내려왔다.
예산에 있는 기공소에서 2년 동안 CAD/CAM파트일을 주로 일했지만 기계처럼 일하는 것 같은 지루함과 목 디스크로 인한 마비증세로 일을 그만뒀다.
그러다 우연히 진료실에서도 일하는 여자 기공사들을 보면서 쉬는 동안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일반 치과에 들어가 진료실 스텝으로 일을 시작했다. 계속 치과계와 연관된 일을 했지만 기공일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조무사 경력만 쌓여가고 있었다. 기공일을 쉴 때도 실장님께선 종종 내게 연락주셨다.
그때마다 항상 나에게 ‘아깝다’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기공일에 질려있을 때라 그 소리가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마치 실패자처럼 들리는 것 같아 괜히 지금생활에 만족하고 후회없다고 더 부풀려 말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내 진로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실장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일이 바빠서 평일 휴무때 한번씩 와서 일해 보라는 아르바이트 권유였다. 솔직히 일을 오래 쉬어 다시 잘할 자신도 없어서 머뭇했지만 실장님은 옆에서 계속 “손으로 하는 일 잠깐 쉰다고 어디 안 간다”고 설득하셨다.
1년 만에 다시 잡은 조각도는 걱정과는 달리 손에 익숙했다. 그날 하루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일을 했던 것 같다. 일을 하는 내내 기공일이 예전에 정말 재미있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몇 번 더 나갔고 눈여겨보시던 원장님은 치과 취직을 권유하셨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2016년 7월 이곳에 취직했고 거의 2년이 다되어 간다.
물론 완벽하게 만족하는 직장은 없지만, 여러번 직장을 옮긴 내겐 가장 많이 웃으며 일하는 직장이 이곳이다. 이곳에서 이제는 기공실과 진료실을 병행하면서 일을 하고 있으며, 모델이 아닌 환자를 직접 보면서 나름대로의 캐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기공일을 쉬었을 때는 마치 인생의 실패자같고 동기들을 보면서 혼자 뒤쳐진다는 생각에 우울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경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기공사라는 이 직업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지냈을 지도 모른다. 기공사들은 보통 3년차가 되면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고민이 들 때 나보다 오래 기공일을 하신 분들께 한번이라도 조언을 구하고 결정했으면 한다.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둬도 된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다시 기공일을 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손으로 하는 일 잠깐 쉰다고 어디 안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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