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LETTER] 천사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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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LETTER] 천사의 몫
  • 최범진 소장
  • 승인 2019.03.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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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시기는 4월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요즘 환경과 기후 변화의 원인으로 봄과 가을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매우 짧아지고 있는 분위기에서 봄, 가을 특히 봄에 대한 기억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꽃이 피는가 했더니, 반팔 티셔츠 차림의 복장이 길거리에 자주 눈에 띄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 날이 좀 선선해지고 단풍이 보인다 싶으면 금새 두툼한 패딩을 찾게 되는 것이 요즘 날씨 변화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봄과 가을에 특히, 봄에는 여러 단체와 집단에서 크고 작은 행사들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야외, 실내 행사를 불문하고 우리의 모임 문화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이라는 것을 정의하는 데에는 가장 큰 기준이 알콜의 함량이다. 즉 술이라고 부르는 알콜의 경우 1%만 함유되어 있어도 술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술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은 누구에게나 다양하게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위스키라는 것을 처음 마셔본 날이 있었다. 물론 비싼 술이라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어 쉽게 마실 수 없는 술이라는 일종의 관념 때문에 성인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셔보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에서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이 ‘천사의 몫’이라는 부분이었다.
설명하는 분의 내용에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위스키라는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스키 제조사의 증류소에서 오랜시간 원액을 숙성하여 만든다는 내용이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위스키 원액을 오크통 속에서 저장하여 숙성시키는 데 평균 1년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약 2%의 원액이 자연 증발을 하게 되는데, 이걸 일컬어 천사의 몫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특히 위스키의 원액은 숙성 기간이 길면 길수록 즉, 천사가 가져가는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값도 비싸고 희소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 기간의 숙성시간에 의해서만 비싸지는 것이 아니고 숙성 기간을 거치면서 오크통 안에서 알콜의 맛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각종 향이 절묘하게 어울어짐을 통해 술의 고유한 풍미가 생기는 것이다. 소위 시간이 천사의 몫만들어낸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원액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그 값어치가 높게 책정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블랜딩의 완성도나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고 심지어 숙성이 이루어진 오크통의 상태에 따라서도 그 값어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치과기공대학에 입학, 주어진 교과과정을 마치고 졸업 후 치과 기공소나 기공실이라는 작업 환경에서 많은 시간동안 보철물을 만들면서 스스로의 테크닉을 단련하면서 그 기간을 충분히 거친 후에 비로소 환자의 구강 안에 들어가는 최적의 보철물을 만들어내는 치과 기공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나 입장도 분명 값나가는 위스키의 숙성 과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치과 기공 영역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고 동시에 더욱 그 빈도와 양이 높아지고 많아지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12년 동안 일을 했느니, 17년 동안 일을 했느니 더 나아가 25년동안 일을 했느니 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분명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기간 동안 한 업종에서 그 고유의 풍미(?)를 내기 위해 수련에 수련을 거쳤을 상황을 고려한다면 최근에 일부 분야에서 그 수련 기간을 인정하지 않거나 평가절하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높은 완성도나 충분한 가치를 포함한 보철물의 제작은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공학적인 기술력의 발달은 분명 치과 기공 업무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철물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장비와 재료의 발달에 의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완성도 또한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한편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부분일 것이다. 기술력의 발달로 말미암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역으로 작용하여 오랜 기간 수련을 거친 부분에 대한 값어치를 평가절하해 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부분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 치과 기공이라는 업무를 시작하여 매년 자신의 테크닉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정이 가득한 마음가짐으로 천사의 몫을 지불해가며 자신만의 고유한 풍미를 만들어온 치과 기공사의 입장에서 값비싼 위스키의 가치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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