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Sroty] 오사카 세라믹 트레이닝 센터에서
성장한 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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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Sroty] 오사카 세라믹 트레이닝 센터에서
성장한 나를 보다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0.01.28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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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치아 제작, 치과기공의 본질임을 깨달아
 
오사카 세라믹 트레이닝 센터에서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던 당돌한 한국인 기공사가 없었다면 이번 취재는 성사되기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해외 경험을 통해 쌓아올린 기공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그만의 진솔한 철학은 비록 젊은 나이지만 기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 
1부와 2부로 연이어 소개되는 이번 기획특집의 1등 공신인 최준태 기공사의 기공인생 이야기와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경험담,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봤다.
일본 오사카=윤준식 기자 zero@dentalzero.com

2009년 치과기공과 입학을 시작으로 ‘Dental’이라는 즐거우면서도 고민이 많은 분야에 한걸음 내딛었다.
20살, 젊고 경험이 부족한 나이에 군병원에서 보철과 치무병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이 첫 방아쇠였고 그 곳에서 열정과 패기가 가득한 치과 전문의 선생님들과의 인연으로 치과영역에서 전반적인 진단 및 치료의 과정과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관찰하며 환자를 위한 올바른 마음을 키웠다.
제대 후 대학교를 다니며 기공소 업무를 병행했고 졸업 후에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임상에 임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됐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치아제작 기술이 발전됐다고 생각해 와세다, 오사카, 쿠와타 트레이닝 센터를 생각했었다.
대학생 시절에 한국, 일본, 중국 치기공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시아권 왁스업 대회가 개최돼 참가했었는데 그곳에서 쿠와타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영감을 받아 선생님의 학교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했었지만 어느 정도 임상을 접하고 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는 말씀에 취직의 길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임상에 발을 내디며 처음 일했던 곳은 미국이었는데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임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한국과 미국 차이점을 느끼고 싶었고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스승님이 경력 45년 이상의 베테랑이셨기 때문이었다.
 
2년 뒤 건강문제로 한국에 돌아와 기공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환자에 대해 각별히 노력하시는 담임선생님과 같은 좋은 원장님을 만나 함께 치아를 위해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 결과 임플란트, 덴쳐, 일반보철에 대한 진단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술과 보철을 병행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일본인 원장님과 기공사 선생님의 세미나를 여러 원장님들과 함께 듣게 되었는데 이때 전반적인 진단과 보철의 과정을 의사와 기공사가 오로지 환자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위해 협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여러 세미나에서 서지컬 가이드라는 것을 보고 임플란트 과정에서 최종의 임플란트를 배치할 수 있는 Provisional implant 시스템을 접한 후 Vacuum Fomer형태에 임플란트 Stent를 만들던 내 자신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서지컬 가이드와 관련한 근무를 시작해 가이드 제작 과정에 대한 프로토콜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작은 노력을 보태기도 했다.
‘D사’에서 내 영어 이름인 ‘Kelly’라는 이름으로 치아 매쉬 데이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가이드 영업을 위해 여러 치과를 다니며 원장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가이드에 대한 생각은 ‘초보들이나 하는 것 아니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던 적이 많았다.
Provisional Implant와 더불어 Provisional Custom, Crown은 미리 계획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의 진보와 함께 환자에게 주는 큰 이점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른 양상을 보고, 가이드에 대한 한국에서의 시장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이드 업무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에는 늦은 저녁에 끝마쳐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캐드캠 메인 기사로 근무했다. 신기하게도 기공소의 이름이 쿠와타 기공소였고 이때부터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에는 임플란트 기업의 해외 디지털 센터장으로 근무했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다. 환경은 살아본 곳 중에서 가장 좋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최신의 디지털 치의학을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며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산 임플란트와 지르코니아라는 재료를 한 국가 안에서 활성화 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매주 주말마다 대학병원과 일반치과를 찾아 갔었다.
대략, 200곳 정도를 방문해 치과의사 분들과 소통했는데 충격적인 것은 200곳 중에 치과 원장님을 보지 못한 곳은 단 1곳으로 모든 치과의사 분들은 발전적인 대화에 긍정적이었다.
단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소통하기 어려운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고 아직 세계시장은 환자를 위한 치아제작이 가능하다는 확고한 비전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네팔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경험으로는 한국 자원봉사 단체인 KOICA 프로젝트에 덴티움 치과의사 직원들과 함께 오지에 의료봉사를 다녀왔던 일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충분한 휴식과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결과, ‘치아를 치아답게 만들고 싶다’ 라는 생각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곳을 생각하며 짧은 유학을 계획했고 한 달 단기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오사카 세라믹 트레이닝 센터에 망설임 없이 등록해 수강하게 됐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8년이 지나서 이루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한 달의 시간, 많은 것을 깨닫고 되돌아 봐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트레이닝 센터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치아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모든 수강생, 선생님 모두 부정적인 기운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성취도를 최대한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인 치아모형을 통해 자연미를 갖춘 올바른 형태, 그리고 치아가 가진 섬세한 텍스쳐를 관찰하며 카피하는 과정을 매일 1시간 씩 연마할 수 있었고 트레이닝을 거치며 지금까지 치과기공일을 해왔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많은 부분들을 놓치며 치아를 제작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카빙과 사진에 대한 내용은 노리타케 인스트럭터인 알렉 선생님이 지도해 주셨고 이맥스, 지르코니아 빌드업에 대한 테크닉은 카타오카 선생님의 핸즈온 세미나로 진행됐다.
이맥스 모놀리티 크라운은 와키타 선생님의 형태학 강의와 함께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이전에는 이맥스 파우더에 대한 이해가 없었는데 파우더에 대한 컨셉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으며, 리튬다이실리케이트와 지르코니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맥스 파우더의 이점, PFM, IPS 파우더까지 고려한 이보클라 비바덴트의 파우더에 대한 컨셉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치아를 처음보고 설레었던 순간이 10년이라는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치아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시야라도 가져가는 느낌을 받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아직 표현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치아는 생각보다 불규칙한 흐름에서 균형있는 비율과 치아에 따라 멋스럽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톱만한 작은 크기의 치아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작은 치아 하나의 구조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있고 치근에서부터 시작되는 흐름에서부터 엽 또는 교두가 합쳐짐에 따라 흐르는 뒤틀림은 기존의 생각보다 정반대인 경우가 다수 존재했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부분을 재현할 수 있는 기공사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그런 기공사의 손으로 표현된 치아에 자연적인 매력을 충분히 품고 있을 시 정당한 대가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트레이닝 센터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지낸 결과, 기공사는 성품이 뛰어난 오너를 만나지 못한다면 기공사 개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보철물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 따른 저렴한 보철물을 소화하는 것은 비지니스적 요소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진정한 치아를 만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겸비되는 것이 어려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치에 대한 관찰 및 자연치를 카피 할 수 있는 트레이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기공사의 첫 번째 자질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아형태를 연구하고 트레이닝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얻은 것이 이번 오사카 세라믹 트레이닝 센터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치아를 만드는 본질에 집중해야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제 치과기공을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를 거친 아날로그 시스템을 토대로 디지털로의 발전까지 이루어져 결국에는 치아를 만드는 기술은 선진화 되어가고 있다.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사항은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연스러운 치아를 만드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 과정에 있어서 디지털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존 아날로그 술식에서 실제하는 물체에 의해 중첩이 불가능 했지만 디지털상에서는 어느 부분이든지 중첩이 가능하고 비슷한 모양에 매칭할 수 있다.
 
최근 CT에서 작은 Detector의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Stiching Mode가 포함된 CBCT의 보급으로 스컬에 대한 활용이 가능하며 CT가 보편화된 한국의 시장에서는 활용가능성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CT 데이터를 통해 안모와 스컬을 동시에 볼 수 있는데 스컬에 상악을 매칭시켜 교합평면과 정중선이 안정된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기존 아날로그에서 가졌던 한계를 벗어난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Jaw motion을 이용해 악관절의 디지털 트레킹이 가능함으로써 치아 가이드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는 범위에 긍정적인 방향성을 얻은 것 같다. 물론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Final Provisional 크라운의 가이드 기준을 확실히 좁혀 준다고 생각한다.
 
Multi-Full 케이스의 경우, 악골 자체가 무너진 경우가 많아 모델만 보고 제작하는 것은 안정정인 Multi-Full 케이스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Face-Bow와 여러 교합기 제조사에서 개발된 기구도 이러한 오차를 줄이기 위함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여건상 적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CT 데이터는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많은 테크니션이 정중선 및 교합평면을 정하는 것에 대해 정상적인 기준으로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는 형태학적이나 심미적으로 완벽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하는 시대로 바뀌어 시간적 여유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치과기공의 디지털화로 치아 제작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진보된 지식과 발전돼야 하는 방향이 많아짐으로써 실력이 좋은 테크니션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뒤쳐지는 테크니션은 도태돼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왁스업, 치아 카빙과 더불어 디지털 왁스업 테크닉의 등장에 따라 사실상 연습해야 할 대상이 손과 마우스 두 가지이기 때문에 연습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주변 소식으로 듣는 지르코니아의 기공수가가 사실상 인도 수준까지 내려 앉았다고 한다.
인도와 한국의 경력 대비 평균 임금을 고려했을 때 3~4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 경험상 개인적인 생각인데 한국의 기공수가를 생각하면 현재 가시적 동향으로 봤을 때 상당히 어려운 난항을 겪는 것 같다.
모든 보철물에 대해 보험을 적용해 가격이 최소한 낮아지더라도 한국의 치과기공시장이 발전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히 진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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