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협회 새 집행부, 소통은 정조같이 하기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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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협회 새 집행부, 소통은 정조같이 하기를 기대
  • 권영국 대표
  • 승인 2020.07.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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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조선 왕조의 역사를 보건데 훌륭했던 왕을 뽑으라면 전기에 세종이 있었다면 후기는 단연 정조를 들 수 있다. 두 분을 대왕이라 칭송하는 이유가 있다면 극진한 애민정신과 그분들의 클래스가 다른 괄목할만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정조를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고 좋은 처세의 방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조선의 22대왕 정조. 그가 누구였던가. 뒤주에 갇혀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던가. 이를 현장에서 아비의 죽음을 다보고 있었던 이산.
그때 정조 이산의 나이가 11세 였다. 이 사도세자 사건은 추후 이산이 왕이 되었을 때 폭군 연산군을 능가하는 피바람을 일으킬 것을 예고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이점은 연산군은 외톨박이로 성장했고 그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을 모두 쉬쉬했던 반면, 정조는 사랑을 듬뿍 주었던 멘토가 두 분이 계셨다는 점이다. 할아버지 영조와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있었기에 정서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었고 훗날 위대한 성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역적으로 몰리면서 폐위되었지만 이산은 일찍 죽은 영조의 첫째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며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게 됐고 영조가 승하하면서 용상에 올랐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의 업적은 탕평과 법전인 대전통편의 완성 그리고 수원 화성 건설, 신혜통공, 장용영, 규장각 설치 등이 있지만 필자는 진정한 애민의 마음을 그의 가장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정조는 수원에 모셔놓은 그의 아비 사도세자의 참배를 위해 12번의 능행을 했는데 그 참배 행렬을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것이 ‘시흥환어행렬도’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임금의 행렬에 백성들이 엎드려 읍조하는 것이 아닌 온백성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는 왕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온백성이 함께 즐기며 참여하는 축제였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조는 민원해결의 달인이었는데 ‘상언’과 ‘격쟁’이라는 제도를 통해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상언은 글을 통해 민원을 올리는 것이고 격쟁은 글을 잘 모르는 백성들이 왕의 행차 도중 꽹과리나 징을 치며 왕과의 면담을 요청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조가 해결한 민원이 무려 3천여건이 넘었다고 하니 여느 왕과 확실히 차별되는 소통의 달인이었고 그의 깊은 애민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개혁군주였던 정조는 49세에 죽음을 맞게 되는데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아 개혁을 완성했더라면 조선 후기의 정세는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아쉬움이다. 그 이유는 정조 승하 후 순조, 헌종, 철종 시대를 이어가면서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외척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며 정조의 모든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나이 어린 왕들을 옹립하면서 삼정의 문란은 극에 달했다. 그로 인한 고단함에 백성들의 민란은 끊임이 없었으니 그 때부터 ‘조선’이라는 큰 배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협회 회원 중심의 정책에 초점 맞춰야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는 세상에서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다. 개혁도 결코 혼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조의 인성과 개혁정신도 남다른 탁월함은 있었지만 주변에 많은 적을 규합하지 못해 분란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했고 좋은 정책들을 시스템화하지 못한 것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예외없이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해 다소 안타까움이 있다.
나라의 정치는 백성 본위의 정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기공사협회 역시도 무엇보다 회원 중심의 정책이 만들어져야할 것이다. 사회적 환경의 문제로 많은 고난 가운데에 처해있는 기공사들의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고민해 본다면 정책의 답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백성만을 생각하며 기득권층에 항거하며 애민 정치를 펼쳤던 정조의 리더십을 상고하며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새롭게 출범한 집행부에 많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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