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Sense] 작은 일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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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Sense] 작은 일상의 변화
  • 유병례 부회장
  • 승인 2021.01.2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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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치과기공사 중 다수는 남성이었지만 여성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기공사라는 직업 자체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만큼 여성치과기공사들의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타이트한 업무 강도와 출산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Woman Sense는 여성치과기공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을 담은 지면으로 이번 호에는 유병례 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 부회장의 원고를 게재한다.

 

2021년 1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펜을 들고 나의 작은 일상을 적어본다.

나의 작은 일상은 아침 7시 어둠이 남아있는 시간 알람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잠을 더 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휴대폰을 확인하며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현관문 앞에 선 후 잠이 덜 깬 얼굴을 확인하며 문을 열었다.

우리 아파트는 총 12층이고, 나는 11층에 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부터 이제 시작이다. 새해부터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다지고 있다. 1층에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 하나, 둘, 셋 하면서 처음 시작은 조금 천천히 12층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쉬지 않고 허리 돌리기를 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12층으로 올라가면서 반복해서 운동했다.

 

그러던 중 3층에서 문이 열렸다. 젊은 아이 엄마와 여자아이, 남자아이가 탔다. 젊은 엄마는 워킹맘인 듯 아이들을 챙기기 바쁜 것 같아 보였다. 내게도 비슷한 나이의 손자가 있기에 “아들 몇 개월 됐어요?”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이들과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한 셈이다. 물론 처음 만났을 때는 아이들이 나를 경계하는 눈빛이 있었는데, 두 번 세 번 마주치게 되면서 익숙해져 아이들도 나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경계하지 않았다.

다시 1층에서 12층으로 향했다.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운동을 반복하니 어느새 밖은 환해지고 내 몸도 열이 올라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체력적으로는 조금 피곤했지만 기분은 매우 좋았다.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추면서 문이 열렸다.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예쁜 아가씨와 아주머니가 탔다. 딸로 보이는 아가씨는 내가 볼 때마다 한 손에 항상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는 기특한 딸을 둔 것 같아 아주머니가 내심 부러웠다. 이들과는 아직 인사를 못 나눴는데 언젠가는 반갑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7층에서는 아저씨와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 운동클럽에서 안면이 있는 분이다. 그분도 아침 운동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계단 운동을 하면서 6층의 노부부, 4층의 총각, 8층의 금은방 사장님 등 어색하고 모르던 이웃들과 친근해졌다.

 

아파트라는 공간에 살며 서로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 요즘 세상. 나 역시도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채로 함께 살아가는 중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로 인해 즐겨 하던 운동을 못 하게 되면서 계단 오르기를 우연치 않게 시작하게 됐다.

유년 시절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 대부분 알고 있어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해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위로해주는 등 사람 간에 정이 있었다. 또한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주위 이웃에 떡을 돌리고, 반상회 등을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음식도 나눠 먹는 끈끈한 유대관계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사 왔다고 주위에 음식을 나누는 경우도 거의 없고, 반상회 역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이웃 간에 느낄 수 있는 정이 거의 없다. TV를 보면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몇 달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간혹 볼 수 있다.

물론 사회가 각박해지고 먹고살기 팍팍해진 현실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 주위에 누가 살고 무얼 하는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나 역시도 내 일에 신경 쓰느라 내 주위에 있는 이웃을 제대로 못 돌아보지 않았나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이런 분들이 있었구나 알아가니 왠지 내가 사는 아파트가 한결 정겨워지는 것 같다. 아파트 문화는 삭막하다고들 하는데 요즘 난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비단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주위에 사는 이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

살아가는 기쁨이란 것이 꼭 물질적인 것 혹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부터 일상에 작은 변화를 준다면 소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몸담은 기공계 역시도 갈수록 팍팍해지는 경영 현실에서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주위에 있는 기공계 선·후배 등을 돌아보고 따뜻한 인사와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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