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청령포에 흐르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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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청령포에 흐르는 눈물
  • 권영국 소장(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
  • 승인 2021.08.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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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이번 호는 전편에 이어서 문종의 유일한 적통이었던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비운의 왕 단종을 생각하면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먹먹한 마음이 밀려온다. 할아버지인 세종과 할머니, 아버지인 문종이 세상을 떠남은 물론 어미인 현덕왕후도 그를 낳고 이른 나이에 별세하니 12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단종은 그를 보호해줄 가족이 아무도 없어 시작부터 많은 난관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나이로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아이였다.
그를 가장 두렵게 했던 존재가 바로 숙부인 수양대군이다.
문종도 승하할 때 성격이 강한 동생인 수양대군을 많이 의식했기에 김종서. 황보인 등의 신하들에게 어린 단종을 잘 지켜 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는데 이들을 일컬어 고명대신이라고 한다.
즉위 후 단종이 제일 많이 했던 말이 “경의 뜻대로 하시오”였으니 모든 정치를 신하들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수양대군은 인사문제에서 고명대신들이 대상자들 중에 황색 점을 미리 표기한 자를 단종이 임명하는 형식의 황표정사 등을 보면서 왕실의 권위가 더 이상 실추되는 것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절대왕권을 지지했던 사람이었기에 신하들에 의해 정치가 좌지우지 되는 꼴을 봐주기 힘들었다.
결국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고명대신들을 사사하고 단종을 협박해 왕의 자리를 양위 받게 되는데, 물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어린 단종이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짐작할 만하다.

단종은 15세의 나이에 상왕으로 물러나 이제는 평온한 삶을 사는가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충신들의 단종 복위운동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다시 한 번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다.
결국 이 사건을 주도했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의 충신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이들의 충절을 기리어 훗날 사육신이라고 불리어졌고 이 사육신들 뿐 아니라 뜻을 같이했던 김시습. 원호 같은 충신 몇 명은 낙향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다 생을 마감했으니 이들을 생육신이라고 했다. 

수양대군 세조는 단종을 가만히 두면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을 우려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후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 보내고 그의 비였던 정순왕후를 노비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도 청령포는 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는 곳으로 단종이 유배시절 기거했던 집이 복원되어 있다. 특히 집 앞에 Y자로 갈라진 노송이 있는데, 단종은 매일 그 소나무에 걸터앉아 한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의 시녀 중 6명이 주인을 보필하기 위해 단종이 청령포에 도착한지 5일후에 주인을 모시러 왔다고 한다.
시녀들은 지극정성으로 단종을 섬기다가 단종이 죽은 후 모두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 그녀들의 깊은 충성심은 세간에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또 다시 단종 복위운동을 일으키면서 세조는 대노를 하게 되고 결국 단종의 사사를 명하게 된다.
단종은 사약을 거부하고 목을 매 자결을 하여 한 많은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니 그때가 1457년 10월 24일이었다.
단종의 시신은 동강 주변에 버려졌지만 아무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가 없었다. 대역죄인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어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 충신이 있었으니 그가 그 지역의 호장이었던 엄홍도였다. 엄홍도는 그의 아들과 함께 지게에 단종의 시신을 싣고 산을 오르던 중 노루가 앉아있는 자리에 눈이 쌓여 있지 않은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하니 그 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세조는 악행을 저지르며 왕위를 찬탈해 용상을 피로 물들였지만 그의 두 아들 의경세자와 예종은 20살도 안되어 죽었고 그도 고작 13년 즉위하고 극심한 피부병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권력도 부귀영화도 한낱 부질없는 꿈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령포 앞을 흐르는 강물이 어쩌면 한 맺힌 단종의 눈물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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