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r Interview]우연으로 시작된 기공 인생, “이 모든 것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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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r Interview]우연으로 시작된 기공 인생, “이 모든 것이 인연”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1.10.10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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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만 바라는 기공은 싫어, 도움이 되는 사람 되고파

포항 원 치과기공소 조용완 대표는 1994년부터 임상기공을 시작해 30여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여러 변화를 겪어온 1.5세대 기공사다. 특히 세라믹 파트를 중심으로 최근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또 배움이 필요한 기공사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재능기부 세미나도 진행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인연”이라며 소박한 웃음을 띤 조용완 대표를 경북 포항에서 만났다.  

윤준식 기자  zero@dentalzero.com

 

대표님은 어떤 계기로 치과기공사가의 길을 선택하시게 됐나요?
정말 우연히 알게 됐어요. 친구 아버님께서 대구를 다녀오시면서 대구보건대 치기공과 입학 원서를 가져오셨는데, 제게 시험을 볼 것을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대구보건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죠(웃음). 그런데 다니다 보니 장학금도 받고 체질인 것 같다는 생각에 잘 다니게 됐습니다. 인연이었다고 봐요.

 

 

대표님의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기공인생이 궁금합니다. 하나의 역사 아닐까요?
암기를 잘했기 때문에 시험 성적이 좋았어요(웃음). 실습 역시 관심을 가지고 하니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방학에도 기공소 출근해서 일을 배웠고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할 당시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전공서적을 읽고 그랬죠. 
1994년 졸업하고 취직자리를 알아볼 때 고향인 포항도 좋았지만 ‘말은 제주도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라’는 말대로 무작정 상경했어요. 당시 하숙비가 급여의 절반이었죠. 졸업생이었지만 학생 때 기공소를 다녔던 덕분에 크라운 폴리싱과 같은 기본기가 다져져 있었고, 왁스업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스승님들 복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때마침 운이 좋게도 최경명 원장님의 Nathology 교합 세미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유하성, 김창환 대표님을 처음 만났죠. 당시 임상 1년차였기 때문에 세미나 내용이 100% 이해되지는 않아서 무조건 외워서 공부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최병건 한국치과 원장님을 만났던 순간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Ivoclar Vivadent의 BPS 이론을 배울 수 있었죠. 그렇게 교합 세미나를 듣고 한국치과에 취직까지 하면서 임상 교합을 제대로 배우게 됐습니다.    

PFM을 포함해 치과용 세라믹, 지르코니아 관련 연구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점에 집중하셨죠? 
기공의 꽃은 세라믹이기에, 1997년에 강남 예치과로 이직하면서 세라믹을 배우게 됐어요. 그 시절에 유하성, 박경식 소장과 함께 유럽으로 세라믹을 배우러 가기도 했죠. 한번은 독일 마이스터 과정을 배우고 싶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IMF 때문에 입학 허가가 취소돼 불발된 게 아쉬워요. 
그 뒤 99년에 포항으로 귀향해 지금의 기공소를 개업하게 됐습니다. 이제 22년이 되어가네요. 
제가 오픈했던 1999년에는 포항에 기공소가 8개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테크닉이나 경영 등의 대부분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나아갔죠. 당시 고급 보철이 라미네이트, 임플란트, 엠프레스, 밀드바였는데 밀드바 같은 경우는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저는 그 기술을 유럽에서 배워와 많은 케이스를 제작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르코니아를 필두로 디지털기술이 활발해지면서 저 역시 10여 년 전부터 지르코니아를 다루기 시작했고 엑소캐드를 친분이 있었던 무암 박정기 대표님께 배우게 되면서 디지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무암 대표님이 제 디지털 사부님이세요(웃음).
그렇게 일을 하면서 지르코니아 원석에 대해 파악을 하니 블록의 쉐이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냈고, 컬러링 시 어떻게 하면 침윤이 더 잘되는 지에 대해서 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찾아가는 재능기부 세미나 스터디 그룹(S.I.G)의 멤버이신데,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많은 기술을 익히게 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의 뜻으로 배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는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기술은 나누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지식공유에 부담감이 없어요. 저희의 세미나를 듣는 분들이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선배님들께 배워서 이렇게 성장한 것이니까요. 
30대 때는 일을 잘하려는 의지로 기공일을 열심히 했고 40대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지만 지금은 주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세미나 강사 활동을 시작하게된 계기와 대표님만의 세미나 컨셉 등을 소개해주신다면요. 
Ivoclar Vivadent社와 인연이 돼서 처음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4년 혹은 2005년도 즈음으로 기억되네요. 디지털 시대로 변하면서 박정기 대표님께 디지털을 배워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디지털 세미나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아름덴티스트리의 지르코니아 블록 개발에 일부 참여하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세멘리스 크라운을 배워서 관련 기업의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극소수의 인원만 해낼 수 있는 90점 이상의 하이-퀄리티 보철 제작보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있는 70~80점대의, 접근하기 쉬운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강의하고 있죠. 또 강의 중간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기공을 대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편이죠. 

지금까지 하셨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부끄러워서 말씀드리기 참 쉽지 않네요. 과거의 실력이 사실 부끄럽습니다(웃음). 그렇지만 제 세미나를 듣고 지금까지도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고 연락하는 분들이 몇 분 계시죠. 포항까지 찾아오셨던 장성환 대표, 수강생으로 오셨을 때부터 비범함이 많이 보였던 임영빈 대표 등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부족했던 제 세미나를 들어주셔서 참 감사할 따름이죠.  

강단에 오르는 것을 꿈꾸는 학생이나 후배 기공사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사회로 진출했을 때 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힘입니다. 그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가치관을 정확히 세워야만 힘을 키울 수 있죠. 그런데, 돈만 바라보며 노력없이 요행만 바란다면, 결국 기공사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노력과 실력을 갖춰야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요행을 바란다거나 돈을 따라다니며 일을 한다면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의 받침인 ‘ㄴ’을 ‘ㄱ’으로 돌리면 ‘독’이 되죠?(웃음) 
또 저년차 때는 일을 하면서 자기 발전을 위해 세미나도 들으며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아날로그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공사가 되면 디지털 기공을 배울 때 날개를 달 수 있을 겁니다. 

 

대표님의 인생에서 기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운명에 맡겨진 일이고 거스를 수 없는 직업입니다(웃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 제게는 이 기공사 하나뿐이에요. 다른 분야를 잘해볼 생각도 안 했었고요. 지금은 스트레스 없이 기공을 즐겨요.  

앞으로의 세미나 계획과 개인적인 목표를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미나 계획이 거창하지 않아요. 이 건물 공실을 얻어 세미나룸을 만들고 치위생사와 소통할 수 있는 세미나를 구상 중이에요. 지금도 치과와 의사소통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거래처 치과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럼으로써 치과와 기공소의 신뢰 관계를 한층 더 높이고, 기공 작업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겠죠. 이외에도 필요시에는 후배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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