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r Interview]“무모했던 도전이 결국 삶의 전부가 됐다”
상태바
[Lecturer Interview]“무모했던 도전이 결국 삶의 전부가 됐다”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1.10.10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샬 덴쳐의 밀링을 위해 스스로 연구원 자처해

서울특별시 마포구, 한 건물에 들어서자 동안의 남성이 레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뒤를 돌아봤다. 바로 서아라 아라치과기공소 소장이다. 서 소장는 파샬 덴쳐의 밀링에 선구자다. “며칠 전부터 또 무언가 연구에 빠졌네요”라는 그의 말처럼 어느 하나에 빠지면 해답을 찾을 때까지 연구를 반복하는 집념이 어렵다는 파샬 덴쳐의 밀링 테크닉을 성공시킨 이유다. <ZERO>는 서아라 아라치과기공소 소장를 만나 평범한 듯 특별한 그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준식 기자  zero@dentalzero.com

 

 

어떤 계기로 치과기공사가 되셨나요?
경찰이셨던 삼촌께서 치기공과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만화 그리기와 만들기를 재밌어했던 터라 삼촌께 치기공과를 듣고 나서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동우대(현 경동대) 치기공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소장님의 대학시절은 어떠셨나요? 굉장히 조용하셨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웃음). 생김새만 보고 조용히 지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술을 워낙 좋아해서 엄청 놀았어요(웃음). 학교가 크지 않아 대학가도 작았는데, 그게 한 몫 하기도  했죠. 선배님들이 지금 학생 때 실컷 놀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그 말씀을 아주 잘 들었습니다(웃음). 또 당시 동우대는 속초 바닷가 근처라 시장에서 회를 포장하고 자취방에서 먹는 게 묘미였어요. 물론 기본적인 공부는 다 하면서 놀 때 제대로 놀았죠. 그래서 그런지 졸업하고 더 열심히 노력한 것 같아요. 놀 거 다 놀아서...(웃음) 그렇지만 학생 때부터 기공을 진지하게 대했어요. 입학하자마자 기공소장을 목표로 삼고 친구들에게 “난 무조건 오픈할거야”라고 말하기도 했죠. 

 

소장님의 졸업 후 기공인생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왜 힘들다는 파샬 덴쳐를 선택하셨죠?
군 제대 후 ‘2018 인구절벽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길을 무심코 걷다보니 요양병원이 많이 보이지 뭐에요? 2018년부터 고령화가 온다는 책 내용과 길가의 요양병원을 보니 앞으로 수요가 많아질 덴쳐 파트에 길이 보였어요. 그때부터 파샬 덴쳐로 마음이 기울었죠. 물론 재밌기도 했고요. 
졸업 후에는 우리나라에서 파샬 덴쳐를 가장 잘 하는 기공소 중 한 곳에 취직했습니다. 그것도 종강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요. 그렇게 파샬 덴쳐를 배우다 이직한 후 크라운과 캡 파트까지 배우며 올라운드 플레이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빌드업까지 배우고 싶은 거에요(웃음). 결국 빌드업도 배웠죠. 그 때의 도전 덕분에 캐드캠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또 당시 기공실에 근무했던 지인에게 토요일마다 찾아가서 어깨너머로 세렉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기공실을 경험해보고 싶어 이직하기도 했죠. 또 기공실에서 근무를 하니까 밀링기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관련된 공부를 꽤 열심히 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아라기공소를 오픈했습니다. 파샬 덴쳐 전문기공소로요. 벌써 올해가 5년째가 됐습니다. 

 

특히 어려운 파샬 덴쳐의 디지털화에 도전하기 힘드셨을텐데, 어떤 우여곡절이 있으셨나요?
디지털 파샬 덴쳐에 관심을 갖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 문득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모 업체의 제안으로 캐드로 디자인할 수 있었죠. 그러고선 디자인 파일을 들고 서울회 학술대회 때 다짜고짜 밀링머신 제조사를 찾아다녔어요. 왁스로 밀링해달라고요. 그런데 모두가 안 된다고 했을 때 두 업체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중 한 업체에 직접 방문해 가능성을 확인하며 시작하게 됐고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우여곡절이라면, 매몰재와 왁스 블록을 ‘내돈내산’ 했는데, 재료비로 사용한 금액이 얼마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썼어요. 오로지 이걸 정확하게 맞춰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지금은 밀링 후 남은 왁스를 재사용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렇지도 않았어요. 남은 왁스 블록이 2~3박스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엄청 사용했던 거죠.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아요(웃음). 

캐드캠을 이용한 밀링 방식의 디지털 파샬 덴쳐를 제작하고 계신데, 어떻게 노하우를 쌓으실 수 있었는지요.
현재 대부분 밀링으로 작업하고 3D 프린터를 쉬운 케이스에 보조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던 것 그 자체가 노하우가 된 거죠. 엄청난 시간, 장비와 재료값, 실패. 이것밖에 없어요(웃음). 샘플 하나 놓고 오차가 없을 때까지 다시 하고, 또 하고 그랬어요. 특히 난케이스로 갈수록 더 고민을 많이 했죠. 당시만 해도 왁스 밀링으로 파샬 덴쳐를 제작한 사례와 관련 논문이 극히 드물어서 마치 연구소의 연구원처럼 한 가지씩 바꿔가며 계속 테스트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왜, 어디서 오류가 났는지 발견할 때까지 연구했어요. 완벽해질 때까지 1000개 안팎은 테스트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세미나 강사 활동을 시작하게된 계기와 소장님만의 세미나 컨셉 등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왁스 밀링을 성공한 후 결과물을 SNS에 업로드하니 지인 분께서 게시물을 보시고 2018년 서울회 학술강의에 추천해주셔서 처음 세미나를 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아름덴티스트리에서 추최한 ‘ADS 2019’ 세미나과 인도에서 강의했고 개인 세미나를 두 번 정도 진행했습니다. 
저는 저렴한 재료로 높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드리는 것을 컨셉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했을 당시를 떠올려보면, 사실 장비도 고가인데 고가의 재료까지 구매할 정도로 기공소라는 곳이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거든요. 
세미나는 기초(1일)와 고급반(3일)을 나눠서 진행합니다. 기초 과정에서는 초심자 분들을 위해 쉬운 케이스로 직접 디자인하고 밀링된 프레임을 매몰까지 진행해 파샬 덴쳐 밀링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드리고 고급반에서는 디자인, 밀링, 스프루 부착, 매몰은 물론 실패했을 경우의 대처법 등 세세한 노하우까지 공유하고 있습니다. 

 

강사로 활동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또 하셨던 강의 중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순간은 언제신가요?
사실 크게 노력한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강사가 되겠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기공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했을 뿐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아름덴티스트리에서 개최했던 ‘ADS 2019’와 인도에서의 세미나에요. ADS 2019는 거대한 스크린과 많은 인원 앞에서 강의했던 경험이 기억나고 인도에서는 인도를 처음가기도 했고 인도인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다는 자체가 신기했었습니다. 영어 번역본을 들고 읽었거든요. 그래서 더 긴장됐었습니다(웃음).

 

 

강단에 오르는 것을 꿈꾸는 학생이나 후배 기공사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개인적으로 강단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노력하다보면 강단에 오르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 강단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잘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금방 스스로 지쳐서 열정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도 연구개발에 매진하다보니 우연히 강의를 제안 받았거든요. 

소장님의 인생에서 기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은 인생의 전부이자 삶입니다. 예전에는 살기 위해서 했던 기공이라면 지금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기공이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봐요. 80%정도까지 조금은 내려놨다고 생각하는데 또 며칠 전에 무언가 연구에 빠졌네요(웃음). 

앞으로의 세미나 계획이 있다면요.
세미나를 하게 되면 말씀드렸듯이 기공사분들이 저렴한 투자비용으로 고품질의 보철물을 제작하실 수 있게 작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게 디지털 시스템을 구매하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를 최소화하면서 높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서로 공유하고 싶어요.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프레임을 삽입할 수 있는 밀링 덴쳐를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것을 주제로 강의를 할 계획도 있고요. 부족하지만 제가 가진 지식의 한도 내에서 작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기공사 선생님들이 지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힘을 내서 잘 이겨내고 행복한 기공을 하셨으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