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가지고 준비한다면 기회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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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가지고 준비한다면 기회는 온다
  • 임성빈 기공사
  • 승인 2017.03.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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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기공사(MDC, CDT, BS)

• 2007년 신흥대학(현 신한 대학교) 치기공과 졸업
• 2010년 신흥대학(현 신한 대학교) 전공심화과정 이수
• 2007-2010년 B&G Dental Laboratory, IDS Korea 근무
• 2012년 UCLA Master Dental Ceramist Program at Center for Esthetic
& Implant Dentistry (Directed by Dr.Edward Mclaren) 졸업
• 2012년 미국 CDT 취득
• 2012-2014년 Beverly Hills Dental Laboratory (Oral Design Los
Angeles) 근무
• 2014-현재 Master Dental Ceramist at The Dental College of Georgia
at Augusta University Ronald Goldstein Center for Esthetic &
Implant Dentistry (Directed by Dr.Gerard Chiche)
• 현재 Noritake International Instructor
• QDT(2016, 2017), Labline(2016, 2017), JCD(2017)외 다수 논문 기고
나의 미국행 이야기
2001년 수능이 끝나고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당시 IMF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은행을 그만두신 아버지와 많은 대화와 고민을 나눈 끝에 문과생이었던 나는 화이트칼라가 아닌 블루칼라의 길을 선택하였고, 나의 최종 진로를 치과 기공사로 정하게 되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와, 복학하기 전 나는 무작정 석 달간의 배낭여행을 떠났다. 참 많은 것들을 보며 지식과 생각의 틀을 넓힐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기 다른 방식·환경·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자연스레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임을 보았고, 그 이후로 늘 외국생활을 꿈꾸며 남은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영어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어느덧 두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배낭여행과 이후 자유롭게 다녔던 국내외 여행들이 미국행을 쉽게 결심하게 해 준 계기가 된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3년을 보냈다. 여느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돌아오는것이 일상이었고, 이따금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진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만큼 힘들면서 즐거웠던 시간도 없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일했던 기공소는 미국에서도 일을 받아서 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곳이었다. 3년이 지났을 무렵 일했던 기공소에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기공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결과 나는 1년간의 어학연수를결심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계획은 미국에 직접 가서 그곳 사정을 직접 확인하고, 전화통화와 이메일만 주고 받을 수 있는 수준만 되더라도 한번 해 볼만한 도전이라 생각해서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이후 정부에서 지급되는 실업 급여로 6개월간 오로지 영어 학원만 다니며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 나의 모교 은사님이자 멘토이신 이태정 교수님(신한 대학교)으로부터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당시 교수님은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어학연수를 고민하고 있을 때 힘을 실어 주셨던 분이다. 내용인즉슨 미국 UCLA에서 Master Dental Ceramist라는 과정을 밟고 있는 동문이 교수님을 찾아와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며 입시 원서를 직접 들고 왔다는 것이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입시 원서를 제출하게 되었고 급작스레 어학연수 준비가 아닌 입시준비를 하게 되었다. 6개월을 준비해 2010년 3월 LA로 직접 날아가 필기, 실기시험, 그리고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마침내 합격의 결과를 얻게 되었고 이렇게 나의 미국생활은 시작되었다.

UCLA 그리고 현지 취업
사실 나는 입시 원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도 학교 이름과 세라믹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학교에서 2년 동안 뭘 배우는지에 대한 지식 없이 첫 학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 세라미스트를 양성하는 이 프로그램은 기공사 10명과 치과의사 5명을 한 클래스로 하는 2년 과정의 프로그램이다. 1학년 때에는 치과 재료학, 형태학, 사진과 프레젠테이션, 디지털 스마일 디자인, 왁스업, 빌드업 테크닉을 배우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2학년 때에는 치과의사와 팀을 이루어 환자의 초진부터 follow-up까지 직접 환자를 보며 일하는 실무 과정이 진행됐다. 또한, 한 달에 한번 학교에서 심미 수복 환자를 선정하여 Dr. Edward Mclaren 선생님이 세라믹 제작 과정을 보여 주시고 학생들도 직접 자기 작품을 만들어 함께 의견을 나누는 “Live Patient Course”가 있다. 짧으면 짧다 할 수 있는 2년이라는 기간은 깊이 있고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언어의 장벽을 넘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학교를 제외하고 한 번도 붓을 잡아보지 않은 나는 파우더의 이름만 익히기에도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2012년 6월 나는 무사히 학업을 마쳤고, 유학생(F1 비자)에게 졸업 후 주어지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로 일자리를 구하던 중 베버리 힐즈에 있는 랩에서 스폰서 조건으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내가 일했던 Beverly Hills Dental Lab은 심미 전문 기공소로 2년간 일하며 세라미스트로서 많은 임상 케이스들을 경험할 수 있는 참 값진 시간이었다.

Georgia로의 이주 그리고 현재의 일상
2014년 11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Georgia에 있는 한 대학 병원 심미 센터에서 세라미스트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결혼 전부터 아내와 다른 주로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LA처럼 큰 대도시에서 조지아에 있는 작은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몇 주 후 입사원서를 제출하고도 한참을 고민하고 또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는 전화 인터뷰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학교가 있는 Augusta라는 도시로 아내와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Augusta는 Georgia 주에서 의료와 군사시설 특정 도시로 인구 20만이 거주하는 소규모 도시이다. LA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시아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미국의 역사적 이유인지 흑인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도시 분위기 자체도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전역 치과대학 중에서 가장 최근에 시설을 리모델링 한 학교로 첨단 장비와 멋진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치과대학의 학장님을 포함해 여러 교수님과 임플란트 심미보철 프로그램 디렉터이자 현 심미치과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Dr. Gerard Chiche, 그리고 열 명 남짓의 보철과 수련의들 앞에서 면접과 케이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안된 자리는 보철과 내에 심미 케이스 임상 제작과·보철과 수련의들에게 사진과 기공 전반에 대한 일들을 가르치는 포지션이었다. 막상 직접 가서 도시를 둘러보고 면접을 보고 나니 뭔가에 이끌리듯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한 달 후에 임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2014년 5월 Georgia로 이주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 주된 업무는 치료계획부터 참여하여 기공사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치과의사와 함께 의견을 수렴하여 환자에게 가장심미적이며 기능적인 보철물을 전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또한 CAD/CAM과 3D Printer, 그리고 Digital Smile Design 등을 이용해 많은 부분을 임상적으로 확대해 가는 것이 추세라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공부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급격한 재료의 발전으로 투명 지르코니아와 같은 새로운 재료를 테스트하고 제조사들에 피드백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가운데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만든 보철물을 직접 확인 가능하다는 것이고 환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형태와 기능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치료실 내에 있기 때문에 여러 치료 계획과 최신의 다양한 술식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재료를 가장 먼저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해외 취업을 고려하는 분들에게

이민과 해외 취업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에게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일단 우리의 일이 손으로 하는 일이므로 그만큼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일이 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단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 번째로 언어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며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아직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다. 세 번째는, 예를 들면 사진이나 프레젠테이션 스킬처럼 치과와 관련된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다. 꼭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연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 자체가 시각적으로 보이는 일이기에 그것을 통해 나의 일을 분석하고 배워 가는 것이 실력을 향상하는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을뿐더러, 외국에서 면접이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 본인의 귀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치과 재료의 발전과 CAD/CAM, 3D Printer 등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업계의 추이가 변화하고 있다. 당장 기계가 사람의 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흐름의 변화에 주목하여 그것들이 나의 일을 위협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것이 현재 우리 기공사들이 준비해야 하는 일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 계신 많은 분이 해외 취업에 관심이 높으신 거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주해 오시는 기공사들이 부쩍 자주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문의를 해 오시는 분들도 꽤 많이 있다.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은 “어떻게 갈 수 있냐? 그리고 연봉이 얼마냐? 살 만하냐?”이다. 어떤 생각으로 해외에서의 삶을 살고 싶은지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이 있을 수 있다. 어렴풋하게 ‘지금 너무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처럼 해외에나 한번 가볼까?’ 하는 심산으로 이민을 준비 하다가 정작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저하거나 거절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지만 급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가겠지라는 마음으로 IELST, TOEFL 등을 공부하거나, 전공 심화 과정이나 대학원 과정을 통해 학위를 취득하며 실질적으로 준비하셨던 분들은 해외로부터 여러 다른 제안을 받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분명한 것은 준비한 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마무리하며..

단순한 해외여행과 달리 이민자의 이름으로 타국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사랑하는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산다는 것이 특히 우리 정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외롭고 힘들 때도 많다.
하지만 분명 한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고, 기공사로서 일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가끔 출근할 때면 “서울에서 4호선을 타고 출근하던 내가 어쩌다가 이 먼 땅 미국까지 와서 이 길을 운전하며 가고 있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7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 캘리포니아 LA로 그리고 LA에서 이곳 조지아 Augusta로.... 정신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계획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길을 걸어왔고, 준비했지만 많은 시간 모르는 길을 용기 내 오늘까지 온 것 같다.
수많은 외국 기공사들을 이곳에서 봐왔지만, 한국 사람만큼 빠른 이해력으로 기술을 터득하고 손재주가 탁월한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최근 SNS나 해외 컨퍼런스, 다수의 컨테스트, 학술지를 통해 많은 한국 치과의사와 기공사의 모습들이 점점 많아지는 모습을 볼 때면 대한민국의 기공사로서 참 마음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한국인 기공사들을 한국은 물론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더 많은 것들을 나누면서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최근 미국에 계신 전상경 선생님이 해 주신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손재주는 좋은데 마음의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되지 마라. 누구한테서 뭘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라고....”. 나는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손으로 일하는 기술자인 우리가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할 멋진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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