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해방 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의 최후①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고 다음날 남대문 시장에는 거짓말처럼 쌀, 설탕, 가죽제품들이 산더미처럼 모여들었다. 일본인들은 세간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당장 항구로 달려갈 기세였으니 그런 심리를 꾀차고 조선인 고물상들은 일본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물건들을 값싸게 사들여 한몫 챙겼으며 그 바람에 쓸만한 물건을 사려는 조선인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어 전에 없던 시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2024-11-07     권영국 소장

세계 2차 대전이 막바지였던 1945년에 일본은 겁없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여 세계대전에 미국을 끌여들였고, 그에 대한 댓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으며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깔끔하게 전쟁을 종식 시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일본은 참혹했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해방을 맞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린 상황이 되었다.

 

해방된 이후에 한국에 잔류해있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우리를 괴롭혔어도 너무 괴롭혔기 때문에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땅에서 생존해있다는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겠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다음날 북쪽에서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폭풍작전을 개시하였다.

그러자 이곳에 있던 관동군 수뇌부는 열차를 동원하여 고위관료 및 그 가족들을 남쪽으로 피난시켰지만 만주 현지에 있었던 10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에게는 어떠한 대피명령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들과 전쟁고아들이 발생하였다.

그 상황 속에서 조선인들과 일본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소집영장을 띄워 회령에 있는 군부대에 집결시켰다.

소련의 공격에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어서 나가사키에도 또 한방의 원폭이 투하되자 결국 일본은 항복을 하게 되었으니 한국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었다.
돈 있는 일본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밀항선을 사서 일본으로 발빠르게 귀국하였으며, 나만 살겠다는 본능만 남은 일본인들은 천왕의 백성이라는 애국심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저 어떻게 하면 조선에서 취득한 재산을 가져갈 수 있을지만 생각하였다.
한일합방 후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가족을 포함해 60만명이 넘었고 이들은 식민지에서

우월감을 앞세워 한몫 챙기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으며, 실제로 그들은 착취로 인해 많은 부를 쌓았다. 일본인들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데 딸랑 몸만 갈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동안 조선인을 착취하여 벌어들였던 재산도 챙겨가야 했기에 15일 당일에는 예금을 인출하려는 일본인들로 인해 은행은 불야성을 이루었고, 이날 찾아간 돈이 너무 많아 은행이 파산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이 상황을 간파하고 돈을 찾아오는 일본인들을 급습해 돈을 빼앗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일본인들은 공권력이 무너진 상황이라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그 외에도 부동산과 골동품 그리고 가구 등을 들고 갈 수는 없었으니 급매로 내놓은 물건들 때문에 시장에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고 다음날 남대문 시장에는 거짓말처럼 쌀, 설탕, 가죽제품들이 산더미처럼 모여들었다. 일본인들은 세간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당장 항구로 달려갈 기세였으니 그런 심리를 꾀차고 조선인 고물상들은 일본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물건들을 값싸게 사들여 한몫 챙겼으며 그 바람에 쓸만한 물건을 사려는 조선인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들어 전에 없던 시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미 군정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현금을 백엔으로 규정하였고, 그러다 보니 일본인들은 급하게 처리한 부동산과 물건을 판 돈을 귀금속 등의 부피가 적은 물건으로 되바꿔 돌아가려 했고, 이러한 규제를 피해 금액과 부피의 제약이 없는 밀항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조선총독은 아베 노부유키였는데, 그는 패전 소식이 들려온 직후 조선에서 약탈한 모든 귀중품들을 챙겨 급하게 수송선에 올랐으나 너무 많은 물건을 실은 까닭에 그배가 얼마 가지 못하고 기우뚱하며 가라앉을 위기에 처하게 되어 그는 결국 물건들을 버리고 부산으로 다시 되돌아와 경성으로 몰래 도주했다고 한다. 최고 책임자가 그 모양이었으니 다른 일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