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조선을 망쳤던 3대 간신
옛날 왕의 주변에는 충신들도 많았지만 입속의 혀처럼 구는 간신들도 많았다. 이번 역사 칼럼은 많은 간신들 중 대표적인 조선의 3대 간신에 대해 설명드려 보고자 한다.
1439년에 태어난 유자광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쓰고 또한 무예도 출중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게 완벽했지만 한 가지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서얼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서자는 양반 아버지와 양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고 얼자는 양반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이 둘을 합쳐 서얼 출신이라 하였다.
때는 조선 초였으니 서얼 출신은 관직에 진출할 수도 없었고,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도 없었으니 무시당하며 서러운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유자광은 능력은 뛰어났지만 과거도 보지 못하며 별 볼일 없는 궁궐 문지기로 일하면서 야망을 숨기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경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때다 싶었던 유자광은 당시 임금이었던 세조에게 상소를 올리게 되는데 자신이 난을 평정하고 이시애의 머리를 임금께 갖다 바치겠노라는 내용이었다.
조정은 이시애의 난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상황에 한낱 문지기였지만 유자광의 패기에 감동받은 세조는 유자광을 왕의 친위병인 겸사복으로 승진시켜 난을 진압하도록 명한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유자광은 뛰어난 무예와 기지를 발휘해 실제로 난을 진압하고 당당히 입성하게 된다.
이로 인해 세조는 유자광을 크게 신임하게 되었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 5품 병조 전랑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심지어 과거시험 결과를 조작해서 문과 장원급제까지 만들어 버리며 신하들을 찍소리 못하게 하였다. 그야말로 기회를 잘 잡아 서얼 출신이 관직에 진출한 첫 번째 사례자가 된 것이다.
유자광이 조선의 대표 간신으로 진화하게 된 계기는 바로 또라이왕 연산군 때부터였다. 연산군 때 선대왕인 성종실록을 편찬하려고 사초를 모으던 중 사초에 발설해서는 안될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내용은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며 세조를 욕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는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원래 실록은 왕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국가 비밀문서인데 유자광은 이 사초의 내용을 몰래 성질 급한 연산군에게 일러바쳤다. 분노가 극에 찬 연산군은 할아버지 세조를 욕한 내용과 관련된 인물들을 싹 잡아다 죽이고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이 사건이 그 유명한 무오사화다.
유자광이 그 비밀문서를 발설하지 않았다면 이런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유자광은 연산군의 개로 사는가 싶었는데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신하들에 의해 중종반정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유자광은 연산군을 버리고 중종반정에 합류하여 연산군을 폐위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그야말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인성 막장을 보여주며 최악의 간신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다음 간신은 연산군의 베스트 프랜드인 임숭재를 들 수 있겠다. 영화로 나온 간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임숭재는 성종의 사위이자 연산군의 매제로 왕실과 친분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었다. 연산군과 나이가 비슷하다 보니 둘은 일찍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임숭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임숭재의 아버지인 임사홍을 알아야 하는데 임사홍은 성종의 신임을 받았지만 성격이 포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조정에 적이 굉장히 많았다. 그는 결국 탄핵을 받아 유배형을 받게 되는데 그의 아들인 임숭재가 연산군에게 간청한 덕에 유배 10년 만에 겨우 조정에 복귀하게 되었다. 이 임씨 부자가 본격적으로 간신 짓거리를 하기 시작한것은 갑자사화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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