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조선 통신사가 본 일본의 충격적인 문화-2편
그렇게 부산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통신사 그룹은 지옥 같은 배멀미에 시달리며 겨우 대마도에 도착한다.
대마도는 부산에서도 보일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예로부터 외교장소의 역할을 해왔고 일본의 관문이었기에 초청받은 조선통신사가 도착하면 예우를 다해 에도까지 친절히 가이드를 해주었다.
오사카에 도착한 통신사 일행은 일본의 발전된 모습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오사카는 상업과 무역을 통해 엄청나게 번성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 화려한 장신구와 비단옷들 그리고 번쩍이는 건물들까지 그야말로 그곳은 신세계였다.
그런 환경과는 별개로 조선통신사는 일본에서 그야말로 인기가 넘쳐났다.
화려한 행렬로 통신사가 떴다하면 지역전체가 들썩였고 유행이 바뀔정도였다.
조선의 문화수준이 일본에 비해 높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생소한 차림의 조선인을 보고 호기심도 많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사신이 쓴 글과 그림이라면 그것을 받기 위해 줄을 섰으며, 하인들에게까지 아무 글이나 한장만 써달라며 졸라대기도 하였다. 심지어 통신사가 쓴 글이나 그림을 지니고 있으면 액운이 달아나고 운이 좋아진다는 루머가 생기기도 했다.
통신사 일행 중 우리가 흔히 보아온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 화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요청하는 바람에 너무 팔이 아파서 울고 싶었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의 마상기술에 환장한 일본인들은 추후 통신사가 올 때 마상재는 꼭 보내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마침내 에도에 도착한 통시사는 쇼군을 만나 국서와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였고, 이어서 각종 산해진미가 올라온 성대한 연회가 열렸는데 통신사 일행이 접한 최애 음식은 가수저라라 불리우던 지금의 카스테라였다.
특히 유교에 심취해있던 조선통신사들에게 개방적인 일본의 성문화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통신사를 구경하러 온 일본인들은 남녀 구분없이 섞여앉아 자연스럽게 애정행각을 벌였고, 길거리의 천인들은 마치 스모선수들 같이 천 쪼가리 하나로 중요 부위만 가린 채 활보하며 부녀자들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남녀가 같이 혼욕을 즐기는 모습이었고, 일본에서는 사촌간에 혼인을 하거나 남성간에 동성연애를 즐기는 와카슈도 문화도 있었는데 통신사 신유한이 쓴 해유록을 보면 "세상에 어찌 음이 없이 양끼리 서로 서로 정을 느껴 즐거워할 수 있소?" 라는 글이 있다.
일본의 개방된 성문화는 이토록 뿌리가 깊고 이것은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 그들은 그런 문화 속에서도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통신사들은 단지 일본의 성문화에 놀란 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출판시장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규모와 출판기술의 우수성은 일본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을 정도였는데,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서책들이 일본에는 즐비했으며 통신사들은 다량의 책을 사비로 구입하거나 선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새로운 쇼군이 취임할 때면 일본의 요청에 따라 파견되었는데, 그러다 1811년에는 대마도에서 국서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약소화 되었고, 그 이후로는 통신사의 요청은 중단 되었으며, 일본은 다시 한번 조선의 뒷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년 가까이 양국의 문화사절단으로서 외교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조선통신사. 이들은 어쩌면 지금의 한류를 이끌어낸 원조 한류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