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LETTER] 보람줄

2025-08-04     닥터스글로벌 최범진 이사

 

우리에게 친숙한 '보람'이라는 단어의 뜻을 먼저 살펴보면 행한 일에 대해 돌아오는 좋은 결과나 그에 대한 만족감을 의미한다. 

보람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뜻을 확인해 보면 드러나 보이는 표시나 흔적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잊지 않기 위해 다른 물건과 구별하기 위해 두는 표시라는 뜻도 있다.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읽은 부분까지 구분하기 위해 끼워 넣는 줄을 보람줄이라고 한다. 지금은 책에 보람줄이 아예 없거나 보람줄 대신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책갈피를 사용하여 표시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낙엽이나 멋진 사진을 코팅해서 책갈피로 사용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금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페이지 수가 많고 글씨 크기도 작은 두꺼운 서적들은 거의 모두 보람줄이 책 위쪽에 붙어 있어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보람줄을 이용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실물 책들이 많이 파일화 되어 보람줄이나 책갈피를 사용할 일이 적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표기되고 심지어 e-book에 더 편리한 기능들이 추가되어 우리가 책을 보는 방법을 넘어 소리로 듣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독서의 개념이 약간 변하고 있다. 

사실 책을 본다는 것은 종이에 인쇄된 글자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나 사진 등을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며 전통적인 방법이다. 손으로 들기조차 무겁고 두꺼우며 작은 글씨를 한글자 한글자 읽으며 단어와 문구 그리고 문장의 의미를 새기며 머릿속에서 책 내용을 그리거나 상상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으로 본다면 종이와 활자로 된 책의 변화도 그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대학생 시절 두꺼운 전공서적을 가방에 넣고 부족해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꺼운 책이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져 테블릿이나 PC 모니터에 표시되고 물리적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쉽고 편리한 시대가 된 것이다.

수업 시간 중에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으며 책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필요에 따라 포스트잇 등을 사용해 빽빽하게 메모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블릿을 펴놓고 메모장을 열어 바로 워드로 저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교수님의 목소리를 바로 글자로 바꿔주는 기능을 이용해 녹음과 동시에 메모장에 텍스트로 저장하기도 한다. 정말 쉬운 방법이다. 

독서의 편리함만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두껍고 무거운 책을 보람줄을 끼워가며 읽는 것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성스레 책을 읽는 방법이 정말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방법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펜을 잡고 종이에 직접 글씨를 쓰는 것보다 키보드로 타자를 치고 종이 문서로 확인하는 것보다 PC 모니터에 떠 있는 자료를 보는 것이 친숙한 시대이니 충분히 이해는 가는 상황이다.

앞으로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은 페이퍼리스 시대를 맞아하게 되고 지면에 인쇄된 활자를 보는 시대가 아닌 모니터로만 확인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시기가 약 20년 전 즈음으로 기억한다. 실제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기반의 업무가 기본이 되었고, 내 손에 있는 휴대폰으로 정말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종이에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 치과기공사가 보철물을 만드는 과정에도 디자인 과정에서 주로 치과용 CAD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업을 하던 영역에서 더 확대된 부분까지 특화된 디지털솔루션이 제공되고 있으니 업무 효율성 상승이라는 부분은 그 활용이 높아지고 있다. 느림의 미학이 주목받는 컨셉이 된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무한한 뇌사용 능력이 일부 저하되는 경우도 함께 발생하는 것도 반대 흐름이라면 흐름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점점 빠르게만 변해가는 시대에 더욱 느리게 보이고 흐름에 많이 뒤처진 것처럼 보여도 깊이를 더해야만 의미가 완성되는 과정은 존재한다. 우리의 치과기공 술식도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시기에 중요한 부분을 확인해가며 일하는 영역은 존재하고 그 과정의 중요성은 완성이 된 시점에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가끔 손에 쥔 책에서 보람줄의 위치가 변함을 보며 느림이 아닌 차분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