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조선판 신데렐라 장희빈의 허와 실 -①편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았다. 장씨는 장현의 종질녀이며 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숙종실록 12년 기록

2025-09-04     베스트라인 치과기공소 대표 권영국 소장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미모를 인정한 여인 중 유명한 인물이 장희빈과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탐했던 어리다.

간혹 장희빈을 본명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희빈은 내명부 정1품 빈으로서 받은 직호이며 장희빈의 본명은 장옥정이다.

장희빈하면 사극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인물인데 그녀가 어떤 특별함이 있었기에 전 국민이 다 아는 역사 속의 유명인이 되었는지 고증해 보도록 하겠다.

그녀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숙종의 비이고 경종의 어머니이며 조선 최초로 궁녀가 왕비가 된 인물이고 사악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권력의 희생양으로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희빈 장씨가 악녀였다는 것 역시 당시 권력구도를 참작해 고찰을 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조선의 19대왕 숙종 때가 그 사건들의 배경이며 그는 환국정치로 신하들을 벌벌 떨게 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왕이었다.
숙종이 세자 때 서인가문의 여식인 김진옥을 빈으로 맞이하였고, 1674년 숙종의 아버지인 현종이 승하하자 숙종이 즉위하여 그녀도 왕비에 오르게 되니 그녀가 바로 인경왕후다.
하지만 인경왕후는 공주 둘을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병으로 죽고, 그녀 역시 20살 때 경덕궁 회상전에서 천연두로 사망하게 되면서 그 유명한 숙종의 여인들의 서막이 열리게 되는것이다.

희빈 장씨가 궁녀로 입궁했다고 해서 가문이 결코 한미했던 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경으로 역관을 지냈고,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그녀는 숙부인 장현의 집안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가세가 기울었고, 이에 그녀의 어머니가 옥정을 궁녀로 보내게 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옥정이 궁녀가 된 지 10여 년이 되었을 무렵인 1680년 겨울,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우연히 숙종의 눈에 들어와 승은을 입게 되며, 그 지독한 운명의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숙종이 본처를 잃고 마음이 허했던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숙종의 나이 20세였고, 옥정의 나이는 22세였다.

숙종이 옥정의 치마폭에 푹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 많은 신하들의 우려 깊은 간언이 있었지만, 숙종이 그런 간언하는 신하들에게 벌을 주자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나서게 되면서 장희빈은 결국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애정행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세력은 서인이었고 그 뒤에는 명성왕후가 있었으니, 남인세력을 뒤에 업고 숙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장희빈은 내쳐짐으로써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궁녀의 로또인 왕의 승은을 입었지만, 한순간에 궁에서 쫓겨나 숙종과 생이별을 하게 된 장희빈은 그저 황당한 상황이었고, 마음속에 칼을 갈게 된다.

장희빈이 궁에서 나간 다음 해인 1681년 5월, 궁안은 성대한 행사가 벌어지는데, 중전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는 혼례가 진행되게 되는데, 이로써 등장하는 여인이 바로 인현왕후였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흥미진진한 이 두 라이벌의 혈투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