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희대의 악녀 '문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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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희대의 악녀 '문정왕후'
  • 권영국 소장(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
  • 승인 2020.08.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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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오늘은 사극에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여인천하의 주인공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산군의 폭정을 저지하기 위해 대신들은 중종 반정을 성공시켜 조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중종의 원비였던 단경왕후도 경복궁에 입성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폐위된 연산군측에 있었다는 이유로 7일만에 쫓겨나게 된다.
당시 중종은 반정 대신들에 의해 세워진 허수아비 왕이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원비인 단경왕후의 폐위를 막을 아무런 힘이 없었다. 단경왕후는 수시로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중종이 다시 자신을 불러줄 것을 염원했다고 한다. 
중종도 그녀가 떠난 후 간혹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시간이 많았다고 하니 단경왕후는 그 소식을 듣고 궁에서 자주 입었던 붉은색 치마를 궁에서 잘 보이는 곳에 펼쳐놓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지금의 인왕산 치마바위의 유래가 되었다는 애틋한 스토리가 전해져온다. 단경왕후가 폐위된 후 곧바로 새 왕비를 세우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제1계비인 장경왕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경왕후는 나중 인종이 되는 왕자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사흘만에 죽게 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우리가 잘 아는 대장금이다.
장금은 장경왕후를 보필하던 의녀였는데 장경왕후가 죽은 후 그를 보필했던 사람들도 큰 죄를 면치 못 하는 상황이었지만 장금은 중종의 신임을 얻었는지 면죄부를 받았다. 추후 장금은 많은 활약을 하게 되는데 드라마 <대장금>에 등장하는 임금이 바로 중종이다. 그후 다시 제2계비를 세우니 그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문정왕후다. 
문정왕후가 구중궁궐에 들어오니 사방이 온통 적이고 생존하려면 대세에 붙어야 했다. 문정왕후는 추후 인종이 될 아이를 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정성을 다해 키웠다. 죽으나 사나 이 아이에게 붙어 있으면 결국엔 생존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국모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지만 문정왕후는 공주를 둘 낳고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기적같이 경원대군을 출산하니 여기서부터 국면이 반전된다. 문정왕후의 손에서 성장한 인종은 친자는 아니지만 상당한 효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렵게 경원대군을 얻었으니 친자식을 출세시키려는 야심이 생겼다.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게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경원대군의 출산 이후 문정왕후는 사람이 확 바뀌어 효자였던 인종을 미워하고 핍박하는데 이는 인종 대신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좌에 앉히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종이 승하하고 배다른 아들인 인종이 즉위한지 불과 8개월 만에 특별한 사유없이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정확한 사인을 알 수는 없지만 역사는 문정왕후의 독살설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명종이 즉위하니 그녀는 인종에 이어 명종대에도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기공계 생존위한 의식 전환 필요한 시대
문정왕후는 동생인 윤원형 등 외척세력을 요직에 기용하니 삼정의 문란은 극에 달했다. 친동생인 윤원형의 후처였던 교활한 정난정이 등장해 국정을 농단하니 백성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고 대신과 백성들은 문정왕후가 빨리 죽기만을 고대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 인물이 의적 임꺽정이다. 문정왕후가 죽자 온 나라가 환호를 질렀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이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명종 다음 왕이 임진왜란의 주인공인 선조였으니 이미 나라의 큰 국란은 예고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한 나라 리더의 오판과 사리사욕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지난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지금의 어려움은 과거의 나의 나태함 때
문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도 큰 국란에는 혼란한 정국이 있었고 지금 우리가 처한 기공계의 어려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환경탓만 하지 말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기공계 종사자 모두 생존을 위한 큰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임을 깊이 통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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