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r Interview]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도전하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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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r Interview]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도전하면 길이 보인다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0.11.26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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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멘토를 따라해보는 연습 게을리 하지 말 것
JD치과기공소 장일환 대표
JD치과기공소 장일환 대표

JD치과기공소의 장일환 소장은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덴쳐 제작으로 주가가 상승 중인 강사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강사 경력이지만, 이보클라 비바덴트의 BPS 시스템과 SR Nexco Paste를 활용한 프리미엄 덴쳐를 주제로 덴쳐 기공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기공소가 위치한 칠성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정만큼 푸근하고 순박한 웃음이 인상깊은 대구 사나이를 소개한다.

윤준식 기자 zero@dentalzero.com
 
처음부터 치과기공사의 꿈을 가졌었나요? 치과기공을 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부모님께서 권유하셔서 알게 됐어요. 어머님의 지인께서 미국에서 기공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처음에는 그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미국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었어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대학교는 졸업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방향을 정하게 됐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도 없었던 나이였고 관심도 없었던 치기공을 부모님 덕분에 알게 됐고, 결국에는 일찍 진로를 정해 대구보건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여러 기공 파트 중 덴쳐의 어떤 매력에 이끌렸는지요.
저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도 기공업무를 했었습니다. 국군 춘천병원에서요. 그 덕분에 제대 후 1년차 시절부터 바로 원스텝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마침 그 당시에 다녔던 기공소의 소장님께서 필리핀으로 의료 선교 봉사를 자주 가셨었는데, 그 곳에 계신 원장님과 함께 덴쳐를 주로 하셨었습니다. 저도 봉사에 참여해서 덴쳐 작업을 보조하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하루에 수십개 씩 제작할 정도로 양이 엄청났습니다.
그 때 환자 구강에 덴쳐를 Try-in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보게 됐고 제가 만든 덴쳐를 장착하고 아주 행복하게 웃는 분들을 보고 엄청난 보람을 느꼈어요. 다녀오고 나서도 여운이 깊이 남았을 정도로요. 크라운을 제작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소장님께 덴쳐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려 덴쳐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 이후 오래되지 않아 기공소를 개업하게 됐고요. 처음에는 덴쳐를 완벽히 알지도 못했지만 패기만으로 도전했었는데 그 패기의 대가로 아주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다행히 모자람이 많았지만 원장님들의 기다림과 도움으로 헤쳐나갔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다 2014년도 즈음에 BPS라는 시스템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잘 달라붙어있는 덴쳐를 본 적이 없어서 무리해서라도 시스템을 구매했었죠. 처음에는 장비를 사용만하면 잘 달라붙는 덴쳐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확한 이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정확한 인상채득을 위한 개인트레이 제작부터 모든 단계가 중요한데, 그걸 모르고 중합만 잘하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어요. 이 BPS 시스템을 공부하고 나니 덴쳐에 대한 매력을 한층 더 느끼게 됐죠.
덴쳐같은 경우, 이게 없다면 환자분들이 음식을 아예 드실 수가 없어서 만들고 나서도 피드백이 가장 많은 보철이에요. 가장 어려운 보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만이라도 잘한다면 확실한 무기가 됩니다. 덴쳐는 저에게 있어서 ‘안전자산’이랄까요?(웃음)
 
소장님의 대학시절 청춘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저는 면허를 취득하고 군대를 갔던 케이스라 복학생 선배님들 사이에 치여서 살았었어요(웃음).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졸업하면 미국으로 건너갈 거니까’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펑펑 놀다시피 보냈습니다.
특히 덴쳐는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었죠. 평소 관심이 있으면 파고드는 성격인데,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거겠죠(웃음). 그래도 나름 손재주는 있었나 봐요. 3학년 때 조각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 실습은 참 재밌게 했었습니다. 제일 싫어했던 덴쳐를 지금은 평생의 업으로 삼아 살고 있다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죠?(웃음)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 세미나 강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BPS를 적용하다 보니 이보클라 비바덴트의 제품을 취급하는 오스템에서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오스템에서는 BPS를 홍보하고 있었어요. 그 때 마침 BPS로 강의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 않았고 SNS에 작품 사진을 올리는 분들도 적었어요. 어쩌다 보니 운이 좋게 선정이 됐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오스템과 치과기공사와의 관계도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선배님들께 여쭤보기도 했죠. 그 때 선배님들께서 ‘자신있게 너를 알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제 이름을 알리자는 소신을 갖고 강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소장님의 세미나는 어떤 컨셉인가요?
매뉴얼대로 BPS 시스템을 적용하기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유럽에서 탄생한 시스템이라 우리나라 실정에 완벽히 맞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좋은 시스템을 로컬 기공소에서도 쉽게 할 수 있도록 중간과정을 제가 커스터마이징 했습니다. 그래서 BPS시스템을 처음 듣는 분들에게는 비추에요. 하지만 이를 시스템화 할 수 있게 확실히 만들었습니다. 제 방법을 그대로 하시면 수정 없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매뉴얼대로 BPS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먼저 들으신 후, 임상에 적용하시다가 ‘이게 왜 안되지?’ 싶으실 때 들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세미나 강연 때 인상 깊었던 기억은 무엇인지요.

대구보건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었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세미나 일정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뛰더라고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등 걱정을 엄청 많이 했어요. 겨우 아닌 척 애쓰며 강단에 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수가 났어요. 모니터와 노트북을 연결하는 단자가 달라서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게 강의 시작 5분 전이었어요(웃음). 다행히 학교 행정 조교분이 단자를 전달해주셔서 약간의 지연이 있었을 뿐 진행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때 겁먹고 떨어서 30여분 동안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그냥 덜덜덜 떨면서 이야기하고, 했던 말을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다행히 시간이 지나 안정을 찾고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 필살기를 녹여냈죠.
 
최근 치과기공계에도 온택트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앙회 보수교육강의를 온라인으로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과 더불어서 촬영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실 코로나 때문에 올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예정되어 있던 세미나 강의들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정기적으로 계획되어있던 가을 시즌의 오스템 BPS강의는 취소됐고, 대구보건대에서 계획되어있던 2학기 동안의 실습강의는 코로나로 인해 강의시간표가 비정상적으로 한달내에 몰리게 되어 학생들도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3월에 계획되어 있던 서울회 학술대회 강의 역시 몇 개월 동안 연기되다 결국 저는 참여하지 못했죠.
그러나 중앙회에서 보수교육강의 자체를 온라인으로 교육점수를 이수하게 할 수 있도록 진행하게 됐고 제가 초청되어 촬영하게 됐어요. 서울회 때 초대 되었던 것과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감사했고 뭔가 뿌듯한 느낌과 동시에 영광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PPT를 수정하고 사진을 추가하며 대사도 한번 씩 다듬어보고 했습니다.
사실 연습을 하긴 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만 혼자 진행하는 강의라 쉽게 생각을 하고 다른 강의들만큼 부담을 갖지 않았던 게 실수였어요. 촬영하시는 분의 간략한 설명을 듣고 시작했는데 방음문이 닫히고 컷이 떨어지는 순간 머리가 갑자기 하얘져서 언제 시작을 해야 할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5분 동안 헤맸던 것 같아요. 본인 소개도 어떻게 했는지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고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딜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는데 시간을 보니 정해진 시간을 초과할 것 같았어요.
급한 마음에 후반부에는 설명도 제대로 못하고 마무리를 지으려던 찰나 고개를 드니, 스튜디오의 시계가 30분을 가르키고 있었어요(웃음). 처음에 스튜디오 시계를 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초반에 당황할 때부터 그걸 잊고 노트북 시계만 보며 강의 하다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 입은 마무리는 하고 있어 다시 또 당황하기 시작했죠. 그날 일을 떠올려 보면 끔찍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아내와 그날의 일화를 이야기하면 아직도 자다가 이불을 차게 되네요.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가 또 있다면 그때는 두 번째이니 잘해보겠습니다(웃음).

강단에 오르는 것을 꿈꾸는 학생이나 이제 막 기공 전선에 뛰어든 후배 기공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강남길 선생님께서 지난 인터뷰 때 말씀하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잘하는 분들을 따라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잘하는 분의 사진을 저장해 매일 관찰하고 따라해 보며 사진도 찍고 SNS에도 올려 많은 분들이 보시고 피드백을 주실 수 있다면, 저는 여기서 아주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늘 칭찬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죽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었거든요.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문득 사진을 업로드 하니까 피드백도 많이 받게 돼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학생이나 저년차 시절에 다른 기공소에 많이 놀러가봐야 합니다. 연차가 쌓이면 그렇게 하기 어렵거든요. 인사차 찾아뵙는다면 그 기공소는 어떻게 하는지 팁을 공유해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의 소장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기공소를 크게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오래 함께 가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다만 인원은 이 정도를 유지하며 기공소 내부만 확장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직원들 모두 BPS 시스템을 할 수 있는 그런 기공소를 만들고 싶어요. 국내에서 BPS라고 하면 ‘JD’, ‘칠성시장’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수 있도록 브랜드화 하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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