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조선판 예인, 기생의 모든 것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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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조선판 예인, 기생의 모든 것 ①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2.05.0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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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라는 옛 속담이 있다.
옛날부터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였고 지금도 북한의 가장 큰 도시이다.
이 평안도 지방은 ‘상도’의 주인공인 김상옥과 같이 만상을 많이 배출해내며 경제적인 풍요를 누렸던 도시였다. 또한 전국에서 아름답고 예능이 출중한 평양기생이 있었기에 유래된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양감사의 바른 표현은 평안감사가 맞는 말이다. 평안감사는 평안도인 평안북도와 평안남도를 다스리는 직책으로 지금의 도지사 급에 해당 되는 높은 자리다. 이 평안감사가 부임할 때 평양의 200명이 넘는 기생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성대한 환영식을 했다고 하니 당시 뭇남성들의 로망이 될 법도 했을 것이다.
황진이, 어우동, 장녹수 등 이름난 기생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조선의 기생하면 고급술집의 접대부 정도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기생은 포졸과 같이 대부분 관아에 소속된 공노비로 적지만 국가에서 녹봉까지 받았던 국가의 인적 자산이었다.

기생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가야금과 같은 악기나 가무를 익혀 각종연회에서 흥을 돋우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국의 사신이나 지방에 출장 온 고위공직자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기생은 등급에 따라 일패, 이패, 삼패 기생으로 분류 되었는데 전국의 기생들 중 상위 등급에 해당되는 150명 정도의 기생들은 지방에서 차출되어 궁이 있는 한양으로 올려 보내져 궁중에서 필요한 예능인을 양성하는 기관인 장악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들이 지금의 연예인급인 일패 기생들인데 매춘은 하지 않는 아주 콧대 높은 예능인들이었다. 사극을 보다가 ‘풍악을 올려라!’ 할 때 등장하는 인물들로 궁중연회에서 뛰어난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고 궁중에 행사가 없을 때에는 고관대작의 잔치에도 불려 나가기도 했다. 왕족이나 양반을 주로 상대했으니 나름 높은 학식도 겸비한 예술인들 이었던 것이다.
지방의 기생들은 기생 양성소인 교방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 기녀들을 이패기생이라고 하였다. 한양에 있는 일패기생들과 지방의 기생들의 큰 차이점은 잠자리 시중에 있었다. 많은 지방의 기생들은 사신이나 출장 온 고위 관료를 상대로 잠자리 시중이 거의 의무였던 것이다. 지방 기녀들 중 가장 불행한 이들은 따로 있었는데 비교적 인물이 능력이 떨어지는 방기였다. 이들을 삼패기생이라고 했는데 세종실록을 보면 북쪽 변방에 발령 받은 군사들을 위해 방기들을 보내라는 명을 내린 기록이 있다. 오랜 동안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는 군관들의 정신적 육체적 안정을 위해 그들을 보필하라고 보낸 것인데 방기들은 식사와 옷수발, 그리고 잠자리 수발까지 보필하였고 그 남성이 임무를 다하고 돌아가면 또 다른 사람을 모셔야 했다.
방기는 임무로 하는 일이었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모셨던 상전과 흠뻑 정이 들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기도 하는데 원칙적으로 기생은 매춘부가 아니다. 삼패기생인 방기라 하더라도 상대에게 어떤 댓가를 받고 시중을 드는 것은 아니었고 그녀들은 국가에서 내려진 보직을 수행하는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기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도 매춘부와 사창가가 있었는데 이들을 유녀라고 불렀다. 기생은 유녀하고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기생이 편법으로 몸을 팔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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