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일본을 개혁시킨 조선의 포로들
상태바
[ZERO speech] 일본을 개혁시킨 조선의 포로들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2.11.30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쟁이 있었으니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7년 전쟁이긴 했지만 7년 동안 계속 전쟁이 지속됐던 것은 아니고 1592년 1차 침략인 임자왜란 이후 우리의 선전과 명나라의 참전으로 3년간 휴전을 했다. 이어서 1597년 2차 침략을 한 정유재란을 통틀어 임진왜란이라고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 의병들의 봉기, 명나라의 지원 등으로 위기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침략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도 종전에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에 얽힌 이야기는 이 밤이 새도록 다해도 모자라지만 이번 호에서는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포로들은 일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임자왜란은 승전국인 조선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침략자인 일본은 패했음에도 꽤 이윤이 남았던 장사였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우리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경제적, 문화적 손실을 입었다. 반면 일본은 조선에서 약탈한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오히려 번영의 계기를 마련해야 했으니 전후의 후일담이 우리에게는 씁쓸한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선조들은 임자왜란을 거쳐 정유재란에 이르기까지 10만 명 이상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일본의 병사가 통합 15~2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10만 명이면 실로 엄청난 인원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조선인들을 인간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돈벌이로 생각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목을 밧줄로 묶어 마치 짐승처럼 처참하게 끌고 갔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을 그렇게 잡아갔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노예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자국의 노예뿐 아니라 외국에 조선인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조선인 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일본은 생포한 조선인들을 짐승처럼 대하며 중노동을 시켰고 아프거나 몸이 약해 이용가치가 떨어진 조선인은 ‘쓸모없는 소’라고 지칭하며 가죽을 벗겨 죽이고 가차 없이 물에 던지는 등 말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살아남은 조선인은 노예 매매상에 의해 일본으로 넘어가 유럽과 동남아 일대에 국제노예로 팔려갔는데 당시 조선의 노예들이 전세계 노예시장에 풀리면서 그 시세는 1/6로 내려갈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 하나의 목적은 도공을 비롯한 많은 조선의 기술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일본이 조선의 포로들 중에서 특별히 선별하여 귀하게 여긴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의 기술자들이었다. 1593년 히데요시가 내린 서신에 의하면 ‘사로잡은 조선인 가운데 세공 기술자와 바느질 잘하고 손재주가 있는 여인을 잡으면 곁에 두어 일을 시키고 싶으니 보내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특히 히데요시가 조선의 많은 기술자 중에서 유독 탐을 냈던 기술자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 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자기 제조술이 급성장했다는 것은 일본을 비롯해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일본은 나무그릇이나 도기를 주로 사용했고 조선에서 흔했던 자기를 만드는 기술조차 없었다. 당시 끌려간 대표적인 도공은 아리타에서 일본도자기의 도조가 된 이삼평과 가고시마에서 사스마 도자기를 생산한 심당길과 박평의가 일본의 도자기 영웅이 됐다. 
특히 이삼평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백자는 중국을 제치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일본의 도자기 산업에 큰 기여를 하게 됐을까? 이는 조선과 달리 일본은 기술자들에 대한 대접이 매우 후했다고 전해진다.
<다음 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