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나라를 두개나 세운 여대왕 소서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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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나라를 두개나 세운 여대왕 소서노 ①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3.01.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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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여걸을 뽑으라면 여러 인물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 중 최고의 인물을 뽑는다면 고구려와 백제를 세우는데 실세 역할을 했던 소서노를 대표적인 인물로 뽑아볼 수 있다.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5부족 가운데 하나인 계루부의 공주였다. 일설에는 유력자였던 연타발의 딸이었다고도 전해져오고 있다. 소서노는 북부여의 왕 해루부의 손자인 우태와 혼인을 했으며 우태가 일찍 죽자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당시 그녀의 나이가 30살 즈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지역적인 기반과 풍족한 유산을 상속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잘난 아들을 둘이나 둔 아쉬울 것이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녀는 당시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땅을 찾아 주몽을 만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 하게 된다.
당시 주몽은 권력싸움에 엮여 동부여의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쫓겨 도망친 20살의 청년이었으니 소서노와 주몽의 나이 차이는 10살 내외로 볼 수 있다. 
주몽은 당시 백발백중의 활 솜씨와 문무가 출중했지만 낯선 땅에서 몇 명의 부하밖에 없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처지였다. 야망을 지닌 젊은 청년 주몽을 소서노가 알아보고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주몽이 먼저 접근한 것인지 명확치는 않으나 어찌됐던 졸본 지역의 역량 있는 소서노와 능력 있는 주몽의 만남은 재벌가의 여인과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조우하는 현대판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서노는 자신의 재력과 세력을 기반으로 주몽을 그 지역 리더로 성장 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주몽은 그녀의 파격적인 후원으로 많은 인재를 끌어 들이며 기원전 37년에 마침내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건국 후 주몽은 행인국 등 주변의 소국들을 복속시키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성장 시켰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개국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후하였고 비류 등을 자기 자식처럼 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둘의 관계가 매우 좋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주몽은 부여에 있을 때 이미 혼인한 여인이 있었다. 당시 그의 부인 예씨는 임신 중이었는데 주몽은 부여를 떠나면서 예씨에게 말하길 ‘만일 사내아이를 낳거든 일곱 모난 돌 위 소나무 밑에 감춰둔 유물을 찾아 나를 찾아오라’는 당부를 했다. 그 후 예씨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유리라 했다. 성장한 유리는 주몽이 당부한 유물인 부러진 칼을 찾아 주몽을 찾아오게 된다. 이때가 주몽이 왕위에 오른 후 19년이 되던 해였다.

예씨 부인의 아들인 유리가 주몽을 찾아오면서 모두가 예측할 수 있듯이 주몽과 소서노와의 사이에 서서히 문제가 커지기 시작 한다. 
주몽은 기뻐하며 유리를 다음 후계자인 태자로 삼았고 원부인인 예씨가 왕비로 소서노가 첩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소서노는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고구려는 자신의 막강한 후원으로 세워진 나라였고 당연히 자신의 맏아들인 비류가 왕위를 이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소서노는 주몽의 배신에 분노 했지만 대인답게 탁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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