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기공으로도 억대의 연봉시대를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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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기공으로도 억대의 연봉시대를 실현할 수 있다
  • 신용숙
  • 승인 2010.11.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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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기공사들의 역량을 살릴 수 있는 기공계를 만들어야

치과기공소장에서 다시 치과기공실장으로 되돌아간 한 남자가 있다. 치과기공실에 근무할 당시 드물게 연봉 1억 2천만 원 시대를 이미 경험했던 그 남자는 치과의사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치과기공사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바로 10월호 덴탈아이콘에서 만나볼 김창환 대표(김창환기예원)가 그 주인공이다.
ZERO의 인터뷰 요청을 어렵사리 수락한 김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가 마치 성공담이나 무용담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이제 자신만의 기공소를 연 그는 품질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기공철학을 들려주며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Q. 치과기공소명이 김창환기예원이다. 상호에 담긴 의미와 의도가 궁금하다.
기예원은 테크닉과 아트의 만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질뿐 아니라 심미성을 두루 갖춘 기공물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사실 김창환기예원이라는 상호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두었었다. 그런데 내 이름을 건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사업장을 이전하면서 상호를 바꾸었다.
사실 수가를 생각하면 기공물의 질을 추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에 있어서만은 타협을 싫어한다. 한 번 타협을 하면 그 다음은 더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주변 치과로부터 ‘모델 및 프렙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거래조차 받아주지 않는 치과기공소’라고 입소문이 난 것도 이 같은 태도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다. 하지만 임상제작과 고객에 대한 기본을 강조하고 원칙을 지켜가면 고객도 그것을 이해하고 존중해준다.

Q. 최근 세미나 활동도 활발한데 치과기공사들에게 있어 배움의 의미는?
치과기공사는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게다가 새로운 테크닉을 모르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특히 기공작업은 손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꾸준한 연마가 중요하다.
2002년 자리를 잡아가던 치과기공소를 문 닫고 모 치과의 기공실로 들어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업물이 임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었고, 치과와 치과기공사 간의 생각 차를 좁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분업화에 따라 치과기공소 내 직원들 간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치과와의 소통도 기공물의 재제작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한다.
당시 치과기공실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 말렸지만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2003년 당시 연봉이 1억 2천만 원이었으니 내 능력을 평가받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셈이다. 나는 노력하면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Q. 2010년 현재 치과기공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연륜 깊은 선배들이 계시는데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게 조심스럽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과거와 달리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분위기와 열정이 많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세미나 열풍이 일어났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그 열풍이 2000년에 접어들면서 상당히 사그라졌다. 그야말로 정체기다. 모든 영역이 그렇듯 치과기공 역시 30대 초중반의 젊은피가 많이 수혈돼야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Q. 그렇다면 왜 치과기공계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는 나를 포함한 선배들이 롤모델로서 평가받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치과기공계에도 실력과 인덕을 두루 갖춘 우수한 분이 많다. 그러나 시쳇말로 ‘기공으로 돈 번’ 치과기공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력한 대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어느 누가 힘들게 일하려고 할까? 젊은층일수록 그런 생각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옛날과 비교해 시대상황도 달라졌다. 디지털에 익숙한 20~30대들에게 치과기공소 현장의 열악한 환경은 실망스러움 그 자체다. 지방의 경우 집진기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다.
거기다 학력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했다. “4년제 대학까지 나와 집진기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치과기공소에서 일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젊은층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학교와 현장의 괴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치과기공계의 정체기를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엔 문제가 있다. 우선 예전과 달리 젊은층에게서 물고 늘어지는 끈기를 찾기 힘들다. 우리 때만 해도 100만원 월급 받아 대부분을 세미나 수강비와 재료 구입비로 할애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일을 10년 동안 한 달도 쉬지 않고 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세미나 광고를 해도 인원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부하는’ 치과기공사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돼 안타깝다.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공계의 미래는 밝지 않다.

Q. 20여 년 치과기공계에 몸담았다. 치과기공계를 이끌어가는 주력세대로 볼 수 있는데 동료 및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일도 잘하고 명예도 얻고 돈도 벌고 싶다. 성공의 기준이 반드시 부와 연결되지는 않지만 일을 통해 명예와 부를 양손에 거머쥘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후배들에게 그런 롤모델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물론 치과기공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함께 발전해야 전체적인 수준이 향상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수가 문제도 그렇다. 수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무턱대고 올려달라고 성토하면 통할까? 안 통한다. 그 단계까지 가기 위한 최소한의 과정이 필요한데 즉, 기공물의 질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칼을 가는 노력의 시간’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최소한 7~8년은 참고 노력하면 명예도 돈도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삶은 고비가 있기 때문에 더 빛나는 법이다. 치과기공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딛고 얻은 성취감은 어느 것보다 더 달콤하기 마련이다. 치과기공의 미래는 스스로 칼을 갈아온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치과기공계는 오래 전부터 수가 현실화라는 구호를 외쳐왔다. 그만큼 투입되는 노력에 비해 수가가 턱없이 낮았기 때문. 재료비도 안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고 보면 그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제 치과기공은 사양산업이다’ ‘CAD/CAM이 점차 보급되면 치과기공사의 설 자리도 줄어들 것이다’라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기까지 한다.
과연 치과기공의 미래는 없는가? 이 물음에 김 대표는 “미래는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끈기를 갖고 다시 한 번 기본으로 돌아가서 치과기공의 기본을 연마하는 데 열정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기공사만이 구현 가능한 오묘한 심미의 세계에 매료되다
김창환 대표는 기공물을 촬영하기 위해 1억 원 상당의 사진촬영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는 “사진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평가를 받는 수단인 동시에 오류를 찾아 나를 성장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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