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천 (주)TP교정치과기공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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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천 (주)TP교정치과기공소 대표이사
  • 김정교 기자
  • 승인 2012.11.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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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사는 생명 다뤄… 사명의식 있어야”

▲ 주동천 (주)티피교정치과기공소 대표
주동천 ㈜TP교정치과기공소 대표이사. 1980년 신흥대 치기공과를 졸업하고 용산 미8군 교정치과 기공실에서 13년 동안 근무했다.

미8군 교정의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대학에서 배우지 않은 많은 새로운 장치들을 만들었고, 더 많은 지식을 알고자 한국 교정의사들의 세미나에도 참석했으며, 미8군 교정의사들이 사용하는 교정 장치 샘플전시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교정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Dr, Roth & Williams 세미나에 참석해 Dr, Roth의 교합이론을 배우면서 tooth positioner의 필요성을 알게 되어 미국 TP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티피치과기공소를 개설, 현재 대표이사이며 지난 7월 창원 학술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도 받았다. 주 대표의 기공에 대한 신념을 알아본다.

Q. 주 대표가 생각하는 치과기공은 어떤 일인가?
A. 먼저 기공사가 만드는 기공물은 공산품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윤리의식과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30년 가까이 기공 일을 하면서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으며, 새로운 학문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Q. 현재 20여 대학에서 학생들이 기공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되는 기공사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A. 너무나 많은 기공사가 배출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통계적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느낄지 모르나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다. 너무 많은 기공사가 배출되므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무너지고 경쟁이 심화돼 기공물 제작비용이 기공소마다 생존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하락한 상태이다.

이러한 경쟁과 기공료 하락은 제품 품질에 영향을 미쳐 결국 환자에게 불량한 기공물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고 기공사의 삶의 질도 피폐하게 만든다. 치과의사보다 더 많이 배출되는 기공사 수가 기공계의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배출 수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예전에는 졸업생 가운데 기공사 합격자는 응시자의 25% 수준이었다. 필기에서 50%, 실기에서 50% 가량을 추려내 실력을 갖춘 25% 정도만 합격시켜 면허증으로의 가치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모두 합격하는 실정이다 보니 자격증에 불과하다. 실력이 되는 사람만 합격시켜 국가 면허증으로의 가치가 회복되어 기공사의 질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Q. 국내 치과기공사의 작업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은데 어떤 부분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A. 저는 미8군 근무시절에 주5일 근무를 했기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재투자하는 시간이 가능했다. 주5일 근무를 지키면 재투자로 인한 선순환이 가능해 지므로 이를 권장하고 싶다.

개업초기 저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실행에 옮기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남들보다 시기를 앞당겨 실시함으로써 직원들의 이직현상이 줄고 안정된 경영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생산성에 따라 근무시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다. 경력자와 신입 기공사가 똑같이 주40시간 근무를 할 수는 없다. 경력자는 하루 8시간만 일해도 주어진 업무를 마감할 수 있겠지만 신입은 그게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추가근무를 해서 업무량을 맞춰야 한다.

티피 기공소에서는 회계, 생산, 재무 프로그램에 많은 투자를 했다. 접수부터 작업 완료까지 각자가 일해야 하는 양에 대하여 일일체크, 시간별, 모든 데이터를 본인이 알 수 있도록 중소제조업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전문회사에 의뢰해 일반산업에서의 경험을 기공소에 접목시켰다. 이로써 생산성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78년 청계천 인근 기공소에서의 수습시절. 3.1빌딩을 올려다보며 “저 빌딩 31층에 내 기공소를 차려야겠다”는 꿈을 가진 뒤 하루씩 그 꿈을 키우며 살아왔다는 주동천 대표. 2명으로 시작한 기공소 가족이 50명에 이르러 직원과 함께 성수동 공장형 아파트로 이사 오기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과 동고동락하며 급여나 재료비, 공과금을 하루도 밀린 적 없다”고 말하는 사람.

“현재의 거래처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왔으므로 개업 후 지금까지 거래처가 꾸준히 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주 대표는 “앞으로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은퇴 후 의료선교를 후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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