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아시아 박종택 소장
상태바
임플란트 아시아 박종택 소장
  • 김정교 기자
  • 승인 2013.11.13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고급 재료로 최고의 보철물 만든다

▲ 박종택 임플란트 아시아 소장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같이 다니던 5명의 기공사가 마음이 맞아 기공소를 열기로 의기투합했다. 문을 연 뒤 10여 년 동안 일만 같이 한 게 아니라 마음도 같이 해 지금은 눈빛만으로 속마음을 읽는다. 통장 잔고까지 공개해 이윤이 남으면 똑같이 나누고 적자가 나면 스스로 급여를 낮추는 기공소. ‘임플란트 아시아 덴탈 랩’의 박종택 소장으로부터 가슴 따뜻한 기공소 얘기를 들어본다.

- 기공소 이름이 갖는 뜻이 궁금하다.
처음 임플란트를 접한 세미나 이름이 ‘임플란트 아시아’였다. 92년경이었는데, 당시에는 기공사를 대상으로 하는 임플란트 세미나가 없었고, 치과의사 대상 세미나였다.

LA 로마린다대학의 유명연자가 진행했는데, 식립부터 완성까지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으로 카데바 실습까지 마쳤다. 이 세미나에서 배운 임플란트 지식을 바탕으로 아시아 권역에서 최고가 되자는 마음도 있었다.

- 임플란트 아시아는 어떤 부분에서 특별한가?
우리 기공소의 가장 큰 특별함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데 있다. 한마디로 ‘우리 기공소’이다. 현재 기공사 5명이 같이 일하고 있는데 1명 빼고 모두 13년 전 기공소 문을 열면서부터 함께 하는 식구들이다. 저도 소장이지만 월급을 받고 있고, 잉여금이 나면 모두 같이 나눈다. 기공소 통장까지 모두에게 공개해 마음에 조금의 불편도 없게 하고 있다.

그래도 처음 3~4년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모두가 서로를 믿는 식구가 됐다.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모두가 행복한 직장이라는 데서 특별하다.

이런 운영방법을 생각하게 된 것은 91년부터 ‘기공인노동조합’을 설립해 인가를 받고 대의원 의장으로 활동하면서다. 노조에는 초창기 발기 때부터 참여해 10년 정도 운영했다.

최근 들어 많이 어려웠지만 분명한 원칙은 이익이 생기면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고, 일의 효율성을 위해 저는 조금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조언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최근의 기공계 불황을 이기기 위한 노력은?
요즘 적자가 날 정도로 어려워진 건 사실이고, 통장을 공개하고 있으니 직원들도 어려움을 안다. 그래서 이들이 스스로 급여를 10% 내리겠다고 했고, 나중에 잘 되면 올리기로 하고 받아들였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져서 불황을 헤쳐 나갈 방법 찾기가 쉽지 않지만 내 입에 끼우지 못할 치아는 내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신뢰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영업해서 생긴 거래처는 없고 거래하는 치과에서 제품을 믿고 찾아온다. 현재 거래하는 치과는 25곳 정도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보내라”고 역으로 주문할 정도로 품질에는 자신이 있다. 전체 물량 가운데 임플란트가 40%, 심미보철이 30% 정도를 차지한다.

재료도 최상급만 쓴다. 메탈의 경우 유럽 제품인 엘리펀트를 쓴다. 1㎏에 100만원인데, 대개의 경우 ㎏ 당 25~30만원 정도만 돼도 좋은 것 쓴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베릴륨 메탈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는 사건 터지기 7~8년 전부터 논베릴륨 메탈을 썼다. 베릴륨의 유해성은 2005년 치과기공사협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 베릴륨의 인체 유해성을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안 쓰기로 했다.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다른 업체에서 35만원 급을 추천하기에 한번 써 봤으나 본딩이나 안정성이 좋지 않아 쓰지 않는다.

- 앞으로의 희망을 들려 달라.
베트남에 의료봉사활동으로 진출할 구상을 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에 의료봉사활동을 나가서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가 진 빚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파월장병은 먼 타국에서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려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베트남 양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당시 파월군이 한 행동이 제가 한 행위는 아니지만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므로 사죄하고 싶은 것이다.

제가 대전보건대 겸임교수이므로 대전보건대 베트남분교 운영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현지에서 기공소도 운영하면서 서로 교환근무를 통해 교육도 추진할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동안 임플란트 아시아에서 생활을 같이 했던 기공사 가운데 마음이 따뜻하고 더불어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만 남았다는 박종택 소장은 “주인 될 사람은 남고 스스로 일을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머슴은 떠나가더라”며 웃었다.

학생들에게는 “웃자, 놀자, 즐기자”를 항상 강조한다는 박 소장은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하고 행복하다”면서 “차를 밀고 갈까, 운전하고 갈까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일이 자동차라면 일 위에 앉아 운전을 하는 기공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