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People사설·칼럼
[ZERO LETTER] 항아리 깨기
최범진 소장  |  dentol00700@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9.25  15:45: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지인의 어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을 우연히 들었다.

처음 부분을 잘 듣지 못했지만 큰 물항아리에 빠져 위급한 상태의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이 사다리와 밧줄을 찾느라 허둥지둥하던 상황에서 한 아이가 큰 돌로 물항아리를 깨뜨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이를 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해외 토픽에 소개된 내용인 줄 알았다.
다음날 다시 생각해보니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내용이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다음 날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니 중국 북송 때의 철학자이며 역사학자였던 사마광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부분을 이야기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의 4자성어인 ‘염일방일(拈一放一)’의 내용이었다. 손에 무엇인가를 잡고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잡기 위해서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물이 가득 담긴 큰 항아리에 빠진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밧줄과 사다리를 찾아 아이를 구해내려 했던 어른들의 소위 ‘잔머리’를 꾸짖는 내용으로도 해석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항아리는 그대로 두고 아이만 구하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생명보다 물질이 우선시된 가치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린아이의 생명도 중요했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큰 항아리를 깨뜨리지 않겠다는 물질적 가치가 먼저 반영된 생각의 틀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거나 몸소 겪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현재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먼저가 아닌 물질을 우선시하는 상황이 개그프로그램과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물질 우선의 분위기는 머리가 굵어진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미 자리를 잡고 또 다른 가치관으로까지 정착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창시절 학과실습을 하면서도 날카로운 메스나 핸드피스에 꽂힌 툴 때문에 손을 많이 다쳤던 기억이 난다. 모델을 만지는 숙련도가 올라갈 때까지는 손에 크고 작은 상처가 항상 있었고 다친 손에 수시로 소독약을 바르거나 거친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는 일은 늘상 반복되었던 것 같다.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도 임상에서 치과기공 업무를 하면서 치과기공사로서의 노련한 모습을 갖추고 숙련도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매끄럽지 못한 손은 당연한 과정이었고, 심지어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서 업무중에 손은 다쳐도 모델은 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었던 것 같다. 거의 모든 보철물을 제작하는데 석고나 초경석고 등의 모형재를 이용해 보철물을 제작하던 시기에 작업모형의 중요함은 몇 번을 강조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모델이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훼손된다면 결과물도 결코 제대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과기공사 면허를 가지고 평생을 작업모형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그러한 작업의 가치에 대해 조금 심할 정도로 평가 절하되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직업의 가치를 해석하는 분위기에 따라서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낮게 평가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러한 부분은 오늘날의 기공 과정에서 더욱 그 평가위상이 낮아지고 있다. 업무별로 분업화를 추구하는 것이 채산성을 높이는 부분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평가가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든 현재든 또 석고로 된 모형이든 스캔 데이터로 된 이미지이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과기공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현실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가려져 잊혀지고,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에 의미가 과도하게 부여되어 중요도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모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공사의 손이고, 이러한 해석은 더이상 숙련자가 되기 위해 당연한 과정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조금 시대착오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항아리의 가치 때문에 적절한 시기와 때를 놓쳐 버리는 불행한 상황이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항아리를 과감하게 깨버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미래를 생각하며, 또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염일방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 저작권자 © 덴포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최범진 소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DNN  |  (04313) 서울 용산구 청파로 45길 19, 3층  |  TEL : 02-319-5380  |  FAX : 02-319-5381
제호 : 제로(Zero)  |  등록번호 : 서울, 아01594  |  등록일자 : 2011년 04월 22일
발행인 및 편집인 : 윤미용  |  편집장: 하정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미용  |  발행일자 : 2010년 10월 1일
제로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 등)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 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2013 제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www.denfol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