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과거길의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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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과거길의 루트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4.05.2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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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부산에서 한양까지 어떻게 갔을까?
지금은 시절이 좋아 고속열차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날라갈수 있지만 말 이외에 딱히 쓸만한 교통수단이 없었고 길도 험했던 그 옛날에는 도대체 그 먼지방에서 한양까지 어떻게 과거시험을 보러 갈 수 있었는지, 또한 숙식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호는 그 옛 과거길로 안내드려 보고자 한다.

교통수단이 불편했고 길마저 험했던 그 옛날에는 경상도 지방에서 한양으로 오는데 약 30일 정도가 소요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말을 타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말을 타고 가는 일부 선비들도 있었지만 말은 가격이 너무 비싼 노비 세사람의 가격이었고, 또한 말 한 마리로 그 먼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지방에 공문을 전달하는 파발마도 곳곳에 역참이라는 정거장이 있어 말을 바꾸어 타고 갔기에 공문수발이 원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과거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시험 날짜의 공지가 있었다.
임금의 재가를 거쳐 시험을 주관하는 예조에서 각도의 관찰사에게 시험 일정을 알리는 파발을 띄우게 된다. 공문을 받은 관찰사는 각 군현과 향교, 서원 경내의 면으로 일정을 통보 하면서 수험생들의 입시 전쟁은 시작되게 된다. 비교적 평야길로 이루어져 있는 전라, 충청도 지역은 그나마 가는 길이 나은 편이었고, 문경새재, 죽령, 추풍령 등의 산악지대를 넘어야 했던 경상도 지역의 선비들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다.
과거시험을 보는 대상은 주로 재력이 있는 양반들이었기에 과거 길을 혼자 오는 것은 아니었고 부리고 있는 하인들이나 몸종들도 같이 동행하게 된다. 한양과 비교적 멀지않은 지역에서는 동행인이 한두 명이면 되겠지만 멀리서 오는 영남, 호남지역의 선비들은 많은 인원을 대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산길을 오다가 혹여 산적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를 대비해 다수의 동행인과 호위무사까지 고용해 대동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불상사는 거의 없었고 비록 옛날이지만 다닐 수 있는 길은 비교적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고 한다. 가는 길은 그렇다 치고, 먹고 자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곳곳에 주막이 있어 돈만 있으면 큰 애로는 없겠다 싶겠지만 사실 주막은 조선후기에 전국을 다니던 보부상들이 활성화 되면서 등장한 것이었다.
주막이 생기기 전까지는 원이라는게 있었는데, 이 원은 국가에서 관리하던 지금의 숙박업소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제원, 홍제원, 이태원, 인덕원 같은 곳을 말하며, 지금은 한 지역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 원은 전국의 1,300여 곳에서 운영 되었고 사신의 중간 휴식처나 지방으로 출장 가는 관리, 그리고 일반 과객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주막은 시장경제가 활성화 되었던 숙종 때부터 생기기 시작해 영. 정조 시기에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인심은 매우 후했다.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은 거처가 마땅치 않을 경우 그 마을유지의 집을 찾아가 지나가는 과객임을 알리고 하룻밤 유하기를 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 주었으며 심지어 밥까지 대접해 주었다. 참고로 경주 최부자집에 방문했던 손님들은 많을 때는 백명이 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는 그런 선행이 선비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단, 조건은 과객이 양반이었을 때만 가능한 설정이었다. 그리고 과거시험의 시즌이 되면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임시 주막을 열어 손님을 받았다고 하니 우리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크게 애로는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과거시험을 보러 갔어도 급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대과 합격자는 33명으로, 낙방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동시에 청탁과 비리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3대가 입시생이었다고 하니 과거시험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가히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엄청난 인원이 어디서 시험을 봤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과거시험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입신양명의 루트가 없었던 당시의 사회 시스템이 안타깝게 생각되기도 한다.

                                                         권영국 소장 

                                           • 동남보건대학교 치기공과 졸업
                                           • 한국사 능력 검정 1급
                                           • 한국사 지도사 1급
                                           • 국내 관광 해설사
                                          (현) 베스트라인 치과기공소 대표
                                          (현) 대한치과기공사협회 감사
                                          (현) 악안면보철학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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